아버지. 손자가 수금하러 왔답니다.

by 돌돌이

우리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잔소리를 하지 않으셨다.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하신 아버지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매일 해 주셨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가 우리를 위해서 새벽같이 나가서 일을 나가서 밤늦게 돌아와는 것에 대해서 고마워해야 한다고 매번 말씀하셨다. 아버지랑은 길게 대화를 나눈 적은 없다. 무뚝뚝한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자랐고 결혼을 하고 아들이 태어나면서부터 아버지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다.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묵묵히 새벽에 대문을 열고 나가는 아버지의 뒷모습과 혼자서 티브이를 보던 아버지의 모습, 술에 취해서 욕을 하던 모습이다.


책을 좋아하고 소설가를 꿈꿨던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 자신의 소중한 것들을 내려놓았다. 나와 동생을 길러주신 어머니는 아버지 보다 더 큰 희생으로 우리를 성장케 했다. 아버지가 술을 먹고 한 번씩 욕을 할 때면 저런 모습은 배우지 않을 거라 다짐했었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 대해서 어머니는 아버지의 희생을 모른척해서는 안 된다고 했었다. 술을 먹고 욕을 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오버랩 돼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난 술을 먹지도 않고 욕도 하지 않는다. 지금이야 아버지한테 시우 용돈 좀 달라고 장난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예전에는 아버지에게 쉽게 말을 걸지 못했다. 아버지는 나에게 높은 존재였고 고지식한 남성상의 표본이었다. 아버지처럼 매일 아침 새벽문을 열고 일평생을 보낼 수 있을까? 아버지의 어깨엔 우리 식구를 먹여 살려야 한다는 책임감이 얹혀 있었다. 새벽이슬을 머금은 차가운 대문을 직접 열 때마다 그 무게를 느꼈을 것이다.


내가 아버지의 뒷모습을 떠올리는 또 다른 이유는 아버지는 매번 혼자 앞질러 가셨기 때문이다. 등산을 해도 산책을 해도 버스 정류장을 갈 때도 매번 앞서가셨다. 준비 또한 빨라서 어머니와 동생이 준비를 시작하기 전부터 모든 준비가 마무리가 되어 있었다. 성격이 급하고 부지런한 성격이라고 하기엔 너무 빨랐고 그리고 매번 앞에서 있었다. 어른이 되고 나서부터 아버지의 그 모습이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를 매번 먼저 누르고 택시를 매번 먼저 잡고 횡단보도가 없는 건널목에 서서 차가 오는지 안 오는지 우리를 지켜주던 모습이 생각난다. 아버지는 우리를 위해 살았던 것이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먼저 준비하고 챙겨 온 것이다.


가장이 되면서 아버지가 자주 생각난다. 아버지가 하는 행동과 말투를 오롯이 따라서 하고 있었다. 이따금씩 어머니에게 시니컬하고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는 모습을 고스란히 아내에게 하고 있을 때도 있었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장난을 거는 것까지. 아버지가 좋은 유산만을 남겨주진 않았지만 가족을 위한 그 마음은 확실하게 전달받았다. 2주에 한 번은 부모님을 뵈러 가지만 아버지는 너무 자주 온다며 설이랑 추석에 단 두 번만 오면 된단다. 손자인 시우를 보며 한없이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이시면서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는 아버지가 너무 고맙다. 이번 설날은 아들 시우와 함께 따뜻한 대문을 열고 말씀드려야겠다.


[아버지. 손자가 수금하러 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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