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 반휴를 세 번 나왔다.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을 일찍 마치고 집에 온 것이다.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고 가능하면 최대한 반차를 써서 나올 생각이다. 연차를 전부 사용하지 못했지만 코로나 환자와의 접촉으로 2주간 공가를 썼고 출산 휴가로 2주간 또 휴가를 나왔다. 덕분에 올해는 작년보다 일을 덜 한 것이다. 이런 체감과는 별개로 직장에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있으면서 매일 하는 루틴을 3일간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점심을 먹지 않고 바로 집으로 오니 점심시간 동안 하던 일들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중 하나가 신문을 보는 것이다.
토요일 것까지 총 4일 치의 신문이 쌓인 것이다. 보통 토요일 것은 월요일에 들고 가서 병원에서 보거나 시우가 잠들고 나면 보기도 한다. 길게는 30분 정도 신문을 보는데 시간을 쓰고 있고 점심을 빨리 먹고 나서 여유롭게 보는 것이 내 일상의 루틴이다. 4일 치 신문을 보려면 빨리 봐도 한 시간은 족히 걸리기 때문에 신문을 볼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 설날 연휴를 맞이해서 우리 부부는 시우를 재우고 나서 드라마 정주행을 같이 하고 있다. 시우가 태어나면서부터 함께 대화를 나누고 시간을 보내는 시간이 줄었기 때문에 시우가 잠든 시간을 신문을 보며 쓰기엔 아깝다. 나는 신문을 보면서 대화를 하거나 무언가를 하지 못한다. 그것을 알게 된 것은 신문을 보다가 아내가 부른 것을 듣지 못할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신문을 읽으면서 다른 일을 함께 하는 것은 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그런지 아내는 내가 신문 보는 것을 좋아하진 않는다. 신문을 보는 행위를 싫어한다기 보다 신문을 보면 소통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하루 동안 하는 행동은 정해져 있고 해낼 수 있는 것들도 한계가 있다. 일을 미루고 그 순간에 해결하지 않으면 신문들처럼 해야 할 일들이 쌓여간다. 신문은 몰아서 읽을 수 있겠지만 순간이 가질 수 있는 정보의 가치는 희석됐을 것이다. 설날 연휴이기 때문에 부담도 없고 여유 있게 신문은 읽을 수 있었지만 매일 보는 신문의 맛이 아니었다. 유력 정치인 가족의 일상과 다른 후보와 관련한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들은 흥미롭긴 했다. 신문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바는 매번 다르지만 대부분은 영양가 없는 이야기들 속에 아주 가끔씩 흥미로운 기사와 칼럼들을 발견할 때 얻는 기쁨은 상당하다.
내가 신문을 보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냥? 예전에 하던 습관 때문에? 이유는 몰라도 신문을 읽는 행위가 내 삶에 들어와 있다. 신문의 칼럼들을 보면서 내가 쓰는 글들과 비교를 하기도 한다. 기승전결에 맞춰서 쓰려는 것과 메시지를 꼭 넣고 제목을 임팩트 있게 쓰려는 것까지. 신문에 내 글이 실리는 일이 있을까? 종종 잡지나 지방지에 기고문이 실리긴 하지만 내가 읽고 있는 신문에도 내 글이 연재되면 좋겠다. 삶 속에서 대화 속에서 느낀 바를 글로 옮기는 것. 옮긴 글에다가 내 메시지를 살짝 넣는 것이 내 글쓰기의 전부지만 꾸준히 지금처럼 해나가다 보면 답이 나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