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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엔 쉬워도

by 돌돌이

이사를 오고 나니 해야 할 것들이 참 많다. 집주인이 아닌 세입자 신분으로 살 때엔 당당하게 필요한 것을 요구하며 편한 삶을 영위했지만, 집주인이 된 이상 사소한 것들도 내 손을 직접 거쳐야 한다. 가구와 가전제품 및 살림들은 기사님들이 알아서 배달과 조립을 해주지만 직접 내 손으로 해야 하는 것들도 있었다. 그중 최고봉은 커튼 설치다. 이케아에서 ㄱ자 모양의 나사를 천장 또는 벽에 박아 고정하는 형태의 커튼 고정대와 커튼 봉을 구입했다. 대한민국의 정규교육과정을 수료한 나는 그림으로 설명되어 있는 안내 종이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30분 정도 들여다보고 조몰락 거린 이후에 결국 설치 과정을 올려놓은 블로그 글들을 또 30분 넘게 보고 설치를 시작했다. 우선 우리 집의 벽은 나사를 박아도 석고(?)가 갈려 나와서 일반 나사가 고정되지 않았다.


다음날 주문한 석고용 나사가 도착했을 무렵엔 몇 개의 구멍이 뚫려 있었다. 석고용 나사는 나사 주변에 깔때기처럼 고정되는 역할을 하는 이음새가 따로 달려 있었는데 이음새의 두께와 크기가 상당했다. 나사보다 사이즈가 커서 만약 벽에 구멍을 뚫는다면 커다랗게 구멍 뚫린 모양이 보였을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거실의 커튼을 설치하기 위해 만들어져 있는 좁은 공간은 총 모양의 자동 드라이버가 들어가지 못했다. 기껏 석고 나사를 샀지만 사용하지 못한 채 결국 천장에 고정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산 제품은 천장에 고정을 하면, 커튼을 고정해야 하는 봉의 나사 부분이 고정되지 않고 이격이 생기는 제품이었다. 것도 모른 채 자동 드라이버가 들어가지 않는 부분을 온몸으로 직접 돌려서 박았건만 다시 온 힘을 들여서 나사를 빼야 하다니. 고정되어 있는 나사를 보며 이 현실을 마주하고 나니 내 입술은 욕이 아닌 단어를 쓰지 못하게 됐다. 박은 나사를 빼려고 자동 드라이버를 반대 방향으로 켰다. 요란한 소리만 나고 빠지지 않았다. 나사의 홈이 갈려서 헛돌기 시작한 것이었다. 홈이 없어지니 홈 크기에 맞춰 드라이버를 바꿔 손으로 돌려도 소용이 없었다. 결국 펜치를 가져왔지만 너무 꽉 박혀 있어서 불가능. 스패너로 조이려고 노력했지만 작기도 작고 나사 앞부분에 고정이 안되어서 실패. 마지막 장도리로 녀석을 앞뒤로 망치질을 해서 헐렁거리는 틈을 타 노루발에 걸어서 겨우 뽑았다. 장장 한 시간이 넘는 사투 끝에 우리 집엔 큰 구멍이 2개가 뚫렸고 그 밑엔 수많은 나사와 잔해들로 현장의 급박함을 알 수 있었다.


쓴맛을 보고 나서 뚝딱거리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내 손재주가 없다는 걸로 결론짓기엔 아버지가 했었던 일들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을까. 어린 아들이 보고 있는 상황에서 고장 난 문고리를 교체하는 아버지의 심정은 어땠을까? 아버지가 뻘뻘 흘려가며 문고리를 달고 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니도 느그집 한번 손보면 그렇게 웃으면서 못본다이. 보기엔 쉬워도 쉬운 게 하나도 없데이


아, 인생이 그렇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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