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 워라벨, 소확행 등 삶의 목표가 성취가 아닌 행복을 최우선으로 여기며 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차를 구입하거나 집을 사는 거창하고 경제적인 행복도 있겠지만 퇴근 후 맥주 한 잔, 드라마 몰아보기 등을 큰 행복으로 느끼는 사람들도 많다. 행복의 사전적 의미는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로 흐뭇함을 느끼는 감정 경험인 것이다. 육체의 감각의 변화 중 하나인 행복한 감정은 영혼 불멸의 것이 아니거니와, 슬픔, 괴로움, 기쁨, 부끄러움과 같은 찰나의 감정 경험인 것이다. 인간의 감정은 무뎌지기 쉬워서 어느 순간부터 행복을 느끼며 했었던 것들이 어느 순간부턴 무덤덤하게 느껴지게 된다.
행복 추구가 삶의 목적이 되고 나서부터 사람들은 더 큰 행복과 만족을 위해 행복을 줄 것들을 찾고 있다. 경제가 어려워지고 성장의 길이 막힌 현시대에, 큰 목표와 거창한 슬로건은 그림의 떡일 뿐이다. 흔히 유행이라는 것도 당장 추구할 수 있는 행복 찾기의 한 카테고리이다. 현실에서 가장 확실하고 쉬운 행복 추구인 유행은 남들과 함께 공유하기 때문에 즐겁게 느껴지고 유행을 향유하는 이너서클의 테두리에 있다는 착각을 준다. 자신이 주체적인 선택을 한 것이 아니고 특정 세력과 문화가 주는 선택지를 수동적으로 택한 것이기 때문에 유행에 더 집착하게 되고 결국 행복의 지속을 위해 점점 파괴적인 선택을 수반하기도 한다. 유행을 소비하며 행복한 감정을 얻기 위한 중독자의 길을 걷게 된다.
내 돈과 내 시간을 마음대로 쓴다는데 무슨 할 말이 있겠냐 만은, 행복 추구를 위한 취미생활이 소비의 형태로 굳어지게 되면 결국은 허무함과 함께 후회의 과정을 겪게 된다. 예를 들어 미드를 보는 취미를 가진 한 사람이 있다고 치자. 우선 미드가 주는 즐거움은 주말 전체를 티브이랑 함께 보내게 만들 정도로 강력한 것이다. 그 행복은 새로운 미드가 올 때마다 다시 느낄 수 있겠지만, 기존에 만족했었던 그 미드보다 더 만족스러운 미드를 찾게 되고 어느 순간부터 습관적으로 미드를 정주행 하면서 주말 시간을 티브이 앞에서 보내게 된다.
여기까지 들어보면 전혀 나쁠 것 없는 취미 생활과 행복한 주말을 보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취미와 행복의 추구의 형태가 중독의 성향을 띠고 있다. 그리고 무의미한 소비엔 허무함이 뒤따라 오기 때문에 어느 정도 생산성이 있는 선택지가 좋다. 예를 들어 미드를 보며 영어공부를 하거나, 미드를 따라 스토리 라인을 한번 직접 써보는 것들이 있다. 이러한 선택 외에도 무언가를 배우는 즐거움에서 행복을 찾는 방법이 있다. 악기를 배우는 사람은 성장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고 무대를 서거나 곡을 연주하며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나은 사람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과거의 자신과 비교해서 더 낫다고 생각이 든다면 충분하다. 행복이라는 감정은 우리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다. 티브이나 사람들에 휘둘려서 내 감정을 소모한다면 그것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을 것이다.
무언가를 만들고 스스로 하길 좋아하는 친구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망치더라도 직접 망치고 말지, 남들이 이래라저래라 하는 꼴은 못 본다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