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명품 시계가 하나 있다. 내시경실 간호사의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그 시계를 차고 일을 하기엔 무리가 있다. 언제 환자가 움직이며 자극을 줄지 모르고, 위생적인 측면에서도 차기엔 불편함이 있다. 그래서 시계를 차지 않거나 차더라도 전자시계를 차는 경우가 많다. 저가의 물건이 아니니 막 차고 다닐 수도 없어서 주말에 차거나 퇴근 후에 찬다. 퇴근 후에 시계를 차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 만은, 쿼츠 시계가 아닌 오토매틱 시계여서 녀석을 차고 활동하지 않으면 멈춰버린다. 매일 시계 밥을 주던지(태엽을 감는 것을 시계 밥 준다고 한다) 매일 차고 다니던지 둘 중 하나는 해야 한다. 자주 태엽을 감아주면 수명이 줄어든다는 이야기를 들은지라 퇴근 후에 시계를 찬 채로 여가시간을 보낸다. 기타를 치거나 게임을 할 때도 시계가 있다. 사실 손목시계가 가장 필요했던 순간은 첫 번째로 군대, 두 번째로 3교대 근무를 하던 병동 간호사 시절이다. 시간은 핸드폰으로 알 수 있었기에 손목시계는 필요하지 않았다.
퇴근 후에 시간이 맞지 않은 채 멈춰있는 모습으로 날 기다리고 있는 시계를 보면 조금은 미안한 감도 든다. 매일 잠시라도 차고 생활을 하면 녀석이 멈추지 않지만, 이틀 정도 내가 시계를 차지 않으면 어김없이 멈춘다. 특히 주말 이틀간은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매번 차고 다니는데 멈춰 있는 시계는 시계로 쓰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편함을 가진 녀석은 8년의 보증기간이 주어지지만 파손이나 내 실수로 인한 망가짐은 비용을 그대로 부담해야 한다. 백화점 직원은 3년에 한 번씩, 최소 5년 안에는 오일을 교체하고 점검을 받는 것을 추천했다. 그 비용은 당연히 내가 지불해야 하지만 오랫동안 사용하기 위해선 당연한 선택이다. 부품 하나에 몇십만 원, 액정을 포함한 수리 비용은 몇 백만 원이 훌쩍 넘기 때문에 파손이라도 하는 날엔 내 경제사정은 파탄 나는 거다. 살면서 명품이란 걸 착용하거나 사는 일이 드물었고 명품시계는 처음이어서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랐다. 매뉴얼을 보며 다른 사람들의 관리 방법을 참고해서 한 달을 함께 보내면서 어느 정도 능숙하게 사용하고 있다. 시계가 익숙해지면서 새것의 즐거움과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지만 시계에 상처가 날까 봐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것과 내심 이 시계를 알아봐 주길 바라면서 소맷단을 살짝 걷어올리는 허세 잡힌 행동이 새로운 습관으로 추가되었다.
이 시계를 찬다고 해서 내 가치가 올라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알아봐 준다면 분명 으쓱하며 기분은 좋겠지만 그것이 내 가치를 판단하는 잣대가 될 수 없다. 나이가 들고 경제적 여유가 생기고 나서 원하던 것들을 가지면서 행복감은 분명 늘었지만 내가 소유한 것들이 내 가치를 판단할 척도는 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사회라는 틀에서 살아가고 더불어 살고 있기 때문에 나라는 사람을 표현하는데 어느 정도 통용되는 틀에서 움직여야 한다. 깔끔한 슈트와 검정 구두, 명품시계, 세단을 타고 다니는 내 모습과 편안한 운동복에 슬리퍼를 신고 다니는 나를 같은 느낌으로 대하지 않을 것이다. 미용실에서 운동복을 입었을 때와 슈트를 입고 가방을 들고 갔을 때의 태도는 완전히 달랐다. 같은 미용실이었는데 나를 몰라본 것이다. 같은 헤어스타일을 부탁했는데 미용하는 시간은 슈트를 입었을 때가 더 길었고 머리에 공을 들이고 있다는 것도 더욱 잘 느껴졌다. 좋은 옷을 걸치고 행동을 하면 없던 자신감도 생기는 것 같고 이런 내 자신감 때문인지 내가 입은 옷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상대방이 날 대하는 태도도 다르다.
명품시계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과 가치 없음을 이야기하는 건 자유지만, 그 시계가 바꾸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본다면 투자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슈트를 입어도 운동복을 입어도 같은 나지만, 남들이 보는 관점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명품 슈트와 시계를 걸치고 국밥 한 그릇 먹으러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