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인기 있었던 밴드인 EVE의 노래를 들었다. 유튜브가 알려주는 알고리즘에 몸을 맡기다 보면 상상도 못했던 영상들을 멍하니 보게 된다. 대부분 시간 낭비인 영상들에 실망이 많지만 갑자기 EVE의 노래를 선곡한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온몸을 쭈뼛 서게 만들었다. 학창시절에 즐겨듣고 추억에 잠긴 노래여서가 아니라 노래 자체가 좋았다. 그때 EVE라는 밴드를 좋아하긴 했지만 'I'll be there'이라는 노래는 자주 듣지도 않았고 좋아하는 곡도 아니었다. 그런데 하루 내내 이 노래를 들으면서 느낀 건 요즘의 신곡들 보다 새롭게 느껴지고 지겹지 않았다. 인기 순위 100위에 있는 곡들을 듣다 보면 들었던 노래들이 딱히 생각나지 않거나 다시 듣고 싶은 노래는 거의 없다. 예전보다 음악을 더 많이 소비하지만 20년도 넘은 밴드의 노래가 더 신선한 것이었다.
한 사람이 듣는 음악적 취향은 30세 이전에 만들어진다고 한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내 음악적 취향은 벌써 완성되었다. 10대엔 이승환 노래에 심취했고, 20대엔 레드제플린, 30대엔 핑크플로이드까지. 내가 좋아하는 가수는 꾸준히 변하고 있고 방향도 왔다 갔다 한다. EVE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그 시절의 추억에 젖는다기 보다 그냥 노래가 참 좋다는 느낌이다. 60,70년대 영국락과 프로그레시브, 90년대 LA 메탈 등 내가 좋아하는 그룹과 밴드는 시대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 기타 사운드를 좋아하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지만 힘 있는 보컬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는 들어도 들어도 지겹지 않다.
앨범을 구매하지 않고 정액 요금을 내면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서 내가 원하는 노래를 어디서나 들을 수 있다. 물과 음식처럼 음악을 소비하기 시작했다. 누구나 음악에 접근할 수 있고 쉽게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이 생겼지만 앨범을 사던 그 시절의 감성은 사라졌다. 음악이 공용이 되었고 내 것이라는 느낌은 없다. 팬심에서 앨범을 사는 사람들도 있지만, 과거엔 노래를 듣기 위해서 앨범을 구매했었다. 앨범 내 곡들은 구매하지 않으면 듣기 어려웠고 CD나 카세트테이프라는 손에 쥘 수 있는 재화는 소장이라는 욕구를 충족시켰다. 음악 감상이 너무 쉬워지니 취미생활에 음악 감상을 적기도 민망해졌다.
EVE라는 그룹이 숨겨진 추억의 감성을 건드려서인지, 그 노래가 나에게 딱 맞는 노래여서인지 모르겠지만 계속 듣고 싶다. 비주얼 락그룹이라고 소개하던 그들은 라이브 실력도 좋고 노래 또한 신난다. 20년이 더 지난 지금 그들이 라이브를 하는 모습은 감격에 가깝다. 이렇게 완벽하게 무대를 보여주고 새롭게 낸 앨범의 퀄리티 또한 부족함이 없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고 고맙다. 이런 좋은 곡들을 선사해 준 그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