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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비드 Apr 14. 2023

시술 빡세게 한 날

 오늘 오전에 대장 내시경적 점막하 박리술(이하 C-ESD)를 3시간 동안 진행했다. 여러 환자를 한 게 아니라 한 명을 세 시간이 넘도록 진행한 것이다. 위와는 다르게 대장은 점막이 얇아서 IT나 nano knife로 시원하게 걸어서 절제하는 것은 위험부담이 크다. perforation도 쉽게 일어나고 air를 많이 넣으면 환자가 불편감을 호소하며 움직여서 시술 시간이 길어진다. PCM과 같은 tunnering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오늘 한 환자는 AC에서부터 Ic valve와 Cecum에 걸쳐 너무 넓게 LST가 있었기 때문에 기본의 방법으로 제거를 한 것이다. cancer 모양은 아니지만 tubular adenoma 모양은 확실 녀석들을 그냥 지나갈 순 없는 노릇이었다. 처음에는 OP를 recommend 하시고 진행하지 않을 줄 알았다. 이거 웬걸. gastro scope을 달라고 하실 때, 아 오늘 죽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scope을 자유롭게 유지하고 접근성을 위해서 위내시경용 스콥을 사용해서 시술을 하시겠다는 뜻이었다.

 P 교수님과 시술할 때는 다른 교수님과 시술할 때 보다 더 긴장을 한다. 워낙 전문가이기도 하지만 시술방 간호사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방에서 검사를 진행할 때는 특별히 이야기를 하지 않으시지만, 시술방에선 조금 더 엄격하게 교육하신다. 덕분에 scope 잡는 방법이나, 나이프가 들어가는 각도와 순서는 빠삭하게 외울 수 있었다. 교수님의 좋은 점은 궁금한 점을 알아서(?) 답변해 주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LC angle의 병변을 precut을 하고 dissection을 하는데 proximal 쪽으로 치려는 거 같았다. 나야 당연히 distal쪽으로 scope을 붙여서 나이프의 방향을 맞췄는데 교수님이 스콥을 손수 옮겨서 위치를 조정하셨다.

[아이고, 선생님 스콥에 힘 좀 빼주세요. fibrosis가 심해서 위에 좀 치고 할 거니까. 선생님이 틀렸다는 게 아니라 pre cut을 확실하게 쳐야지 나중에 cutting 하기도 편해서 그래요. 유연성이 있게 해야지.]

 P 교수님이 좋은 점은 내가 하는 행동의 이유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난 나름 이러이러한 이유로 행동할 때가 있는데 스텝과 같이 일하는 간호사들도 그 이유를 모를 때가 있지만 P 교수님은 내가 하는 행동에 대해 이유를 대부분 알고 있다. 그래서 교수님과 일할 때 오히려 더 많이 말을 하고 질문도 많이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의견을 제시하면 대부분 수긍하시고 시술에 반영하기 때문에 간호사로서의 만족도도 높다. 일반 검사나 간단한 시술의 경우 누가 해도 상관없다. 하지만 난이도가 있는 시술은 숙련된 간호사가 어시스트를 한다.

 오늘 오후에 진행한 C-ESD의 경우 precut을 넣고 snare를 통해 제거하려 했지만 병변의 섬유화가 심했고 cancer 병변의 경우 scope이 빠지는 위치에 있었다. knife로 병변을 더 박리하기엔 perforation의 위험이 컸으며 나이프의 각도를 봐도 점막을 뚫는 위치였다.

[교수님, 나이프로 박리 좀 한 다음에 해야 할 것 같습니다. snare는 걸리지도 않고 각도상 나이프가 들어가기 어렵긴 한데 하는 게 어떨지...]

[각도상 이게 딱 perforation 되는 거고 위치도 안 좋고.]

[교수님, 인젝 빵빵하게 넣고 한번 시도해보는 게 어떨까요?]

 결과는 좋았다. 1시간이 넘도록 제거하기 위해 노력했던 그 병변을 겨우겨우 제거 한 것이다. 누가 봐도 점막을 관통하는 위치였기 때문에 나이프로 더 진행하는 것엔 무리가 있긴 했다. 나이프와 병변 사이의 거리를 동일하게 유지하기 위해 환자에게 숨참아 달라는 말만 50번은 더 한 것 같았다. ligation으로 당겨 올려도, suction을 해도 cancer 부위는 딸려올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에 과감하게 진행하는 수밖에 없었다. 결과가 좋아서 모두가 행복 하긴 했지만, 이런 케이스는 정말 1년에 많아 봤자 한두 번이다. 그 두 번이 오늘일 줄 누가 알았을까?

P.S

 이렇게 시술을 빡세게 한날은, 독서도 글쓰기도 할 엄두가 안 난다. 에너지 총량의 법칙은 존재하는구나 싶다.


사진은 OR방가서 POEM 하기전 셀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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