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평소에 먹는 슴슴한 과자 대신 초코가 발린 달달한 과자를 쥐여 줄 때가 있다. 그런 경우 평소보다 더 신나게 어깨를 들썩이며 춤을 춰가며 과자를 먹는다. 과자 하나에 자신의 온몸으로 행복함을 표현할 줄 아는 존재. 아들은 이만큼이나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게 반응한다. 행복함과 기쁜 감정의 역치 또한 낮아서 사소한 것에도 충분히 만족감을 느낀다.
아들과 외출을 했는데 날씨가 좋았다.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외출하기 가장 좋은 날씨. 선선한 바람도 불어오고 있었고 아들은 내 손을 꼭 잡고 함께 걸어가고 있었다. 시우는 기분이 좋은 듯 자주 보는 티라노사우루스 노래를 따라 부르며 춤을 추며 걷기 시작했다.
[시우야, 안 추워?]
[안 추워.]
[그럼 더워?]
[아니 안 더워.]
[시우 그럼 기분 어때?]
[좋아. 시우 좋아.]
기분이 좋다는 뜻인지, 날이 좋다는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얼마나 큰 감동이었는지 모른다. 또박 또박 좋다고 대답하면서 덩실덩실 춤추는 아들을 보면 한방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다. 날이 좋은 날, 밖에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지고의 행복을 표현하는 시우. 내가 과연 동일한 상황이라면 어떻게 반응했을까? 그냥 '날이 좋네'라는 말 정도를 내뱉거나 생각만 잠시 해버리곤 갈 길을 갔을 터다. 산책도 잘 안 하지만, 목적이 없는 외출은 하지 않았다. 외출을 대하는 아들과 나를 비교해 보게 된다. 그런 와중에 시우가 한마디 더 보탠다.
[아빠. 좋아]
아빠가 좋다는 뜻인지, 아빠도 좋냐는 의문형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행복에 겨워 대답했다.
[아빠도, 시우 너무 좋아.]
[시우도 아빠 좋아.]
아들은 눈치가 빠른 편이고, 어딜 가도 사랑받는다. 자신이 예쁘냐고 묻기도 하고 귀엽냐고 묻기도 한다. 자신의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칭찬받기 위해 노력한다. 아들이 내 기분을 위해서 한 립 서비스(?)라고 생각하더라도 행복은 쉬 사라지지 않는다. 아빠가 좋다고 이야기하는 아들을 보면서 기쁨이 벅차오른다.
아들이 만 2세가 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의사 표현도 하고 자기 고집도 부리지만 여전히 귀엽고 사랑스럽다. 시간이 지나고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아들을 보고 배울 점이 생겨 난다. 아들처럼 초코과자 하나에 세상의 행복을 거머쥐듯이 춤을 추며 노래할 수 있을까? 단지 밖을 나왔다는 이유만으로도 즐거워하며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을 표현할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먼저 표현하는 용기를 가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