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변기에 스스로 소변을 보는 것

by 돌돌이


둘째가 태어나면 시우만큼 사랑할 수 있을까? 이제 큰아들이 되는 시우가 좋다.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내 혈육. 퇴근을 하고 집에 오면 현관으로 뛰어나와서 나를 반기는 아들. 아빠가 좋다고 하고 뽀뽀도 수시로 해주고 안아달라고 이야기하며 자신을 표현하는 시우. 내가 이런 아들을 앞에 두고도 과연 둘째가 태어났을 때 동일한 사랑의 감정을 품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주변 사람들은 둘째가 태어나면 그렇지 않단다. 새로 태어난 아기가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단다.


시우가 태어나고 그 모습을 처음 봤을 때의 광경을 생각해 본다. 세상을 향해 울고 있었다. 나보고 영상을 찍으라는 간호사 선생님의 말에 핸드폰을 들었지만 추워하며 몸을 떠는 아들을 계속 볼 수 없었다. 영상을 꼭 남겨야 한다는 그 선생님의 마음을 분명 알고 있었지만 갓 세상에 나와서 몸을 떠는 아들을 보는 게 안쓰러웠다. 덕분에 시우가 갓 태어난 모습을 담은 영상은 짧다. 언제나 내가 보는 대로 세상을 봤으니, 시우를 보는 마음도 그랬었다.



아들이 미끄럼틀에서 넘어져서 눈가를 다친 적이 있었다. 새벽에 병원에 가서 아들의 상처를 꿰맸었다. 수면약을 먹이고 재우는데 아들이 상처가 벌어져서 아픈 와중에도 나를 보고 싱긋 웃어줄 때의 그 모습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한다. 병원에서 눈물을 겨우 참고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엉엉 울었다. 살면서 그렇게 많이 크게 운 적은 처음이었다. 내가 무력하다고 느꼈을 그 순간에도 그런 나를 사랑해 주는 존재. 나에게 시우는 가장 큰 의미가 되었다.


시우와 함께 시간을 보낸 지도 29개월째로 접어들고 있고 이제는 의사소통도 하고 대화도 하면서 함께 지낸다. 그래서 몸이 힘들고 지쳐도 웃으면서 시우와 놀 수 있다. 시우에게 아빠가 출근하지 않는 날은 놀러 가는 날이다. 그래서 내가 아침에 출근하지 않고 있으면 [오늘은 어디가?]라고 묻는다. 그리고 [오늘 뭐 할 거야?]라고 물으며 나를 압박한다. 학회를 가지 않는 이상, 우리 가족은 주말에 나간다. 아빠는 공룡과 돌고래, 양, 말, 뱀 등의 동물들을 보여주고 함께 하는 사람이다. 엄마보다 유튜브도 잘 보여주고 말타기와 목마, 비행기도 태워주는 사람이다. 이제는 내가 보는 대로 세상을 보지 않는다. 시우의 시선으로 눈높이로 보고 있다. 나의 성공도 중요하지만 아들이 변기에 스스로 소변을 보는 것은 더 큰 성공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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