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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비드 Oct 07. 2023

의학용어를 쓰는 이유

 일을 하면서 간호사들은 약속한 용어를 사용한다. 어느 분야나 부서에서도 통용되는 언어들이 있겠지만 병원에선 영어와 라틴어의 혼종(?)인 의학용어가 쓰이고 있다. 간단하게 몇 개의 단어로 인계를 주기 때문에 사용하는 입장에선 편하지만 해당 분야의 근무자가 아니라면 이해하기가 어렵다. 처음부터 한글로 알려주는 게 더 쉬운 거 아니냐며 반문할 수 있겠지만 한글화로 대체한 용어를 써가며 업무를 수행하기란 쉽지 않다. 대체화한 용어들이 일상생활에서 통용되는 단어가 아닌 경우가 많고 한자로 만든 단어들도 있다. 예를 들어  'MB-GC PW erosion bx 했다'라는 표현을 한글 용어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위의 후벽에 있는  몸통(위체부)의 중간 부위에 있는 큰굽이(대만)에서 미란을 조직 검사했다'이다. 의료기관에서 용어 자체를 한글로 풀어서 적는 행위가 용어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친숙하게 다가올 수 있겠지만 동종업계의 사람들에게는 효율성이 떨어진다.


 한글로 표현하면 이해가 더 어렵고 표현도 명확하지 않은 경우도 많다. 우선 전공과 일터에서 사용하는 의학용어는 기본적으로 습득해야 하고 그와 매칭이 되는 한글로 순화된 표현도 습득해야 한다. 한글로 한번 바꿔서 사용해 보려고 해봤지만 시간도 그렇고 명확한 용어도 찾기 어려워서 기존에 쓰던 의학용어와 한자 표현을 쓰고 있다. 법적인 강제성이 없는 한 용어의 변화는 이뤄지지 않을 것 같다. 의학은 서양에서 들여온 학문이고 병원에서 사용하는 의학용어는 의사소통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학용어를 환자에게 설명하는 일이 익숙지 않으면 낭패를 보기도 한다. 회복실에서 설명하는 간호사 중엔 의학용어를 본인도 인지하지 못한 채 쓰는 경우도 많다. 환자와 보호자가 의아해 하는 경우도 있었고 이해하지 못하여 되묻는 경우도 있지만 이해하지 못한 채 마냥 듣고 있는 환자와 보호자들을 보면 미안하고 부끄러울 따름이다. 결과가 궁금해서 잠도 못 이룬 채 조직 검사 결과를 기다릴 분들이 간호사의 설명을 알아듣지 못하고 외래 날짜만 손꼽아 기다린다면 얼마나 답답할까? 단순히 위염을 조직 검사를 했다 하더라도 검사를 받은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걱정스러울 것이다. 


 우리 내시경 선생님들은 약물 투여를 하고 나서 실수로 gtt 수를 맞추지 않고 회복실로 빼는 경우가 있다. 난 이러한 걸 볼 때마다 직접 방에 들어가서 fluid gtt(시간당 수액 투여 용량)을 확인해서 빼달라고 이야기한다. 그 순간에 이야기해야지 그날 하루는 실수를 하는 일이 없을 테니까. 같은 날에 두 번 실수한 간호사에게는 정신 차리고 일하라고 정색하며 이야기하기 때문에 지적받은 선생님들은 나를 불편(?) 해 하기도 한다. 특히 시술 환자의 경우 fluid가 다 들어 간 경우, 병동에 전화해서 꼭 다시 connect 하라고 한다. 애초에 내가 시술방에서 일할 때엔 시술 후 들어갈  ppi fluid를 미리 보내 달라 하거나 500ml 이하로 남았으면 전화를 해서 시술 전에 추가 fluid를 부탁했다. hydration이 필요한 경우도 있을 테고 시술이 3시간을 넘어갈 때도 있었으니까. 약물을 투여하더라도 n/s으로 shooting 해서 약물이 들어가도록 해서 기존에 달고 있는 fluid의 gtt 수를 그대로 유지했다. 나처럼 오버할 필요는 없지만 특히 I&O를 철저히 지켜야 하는 KI나 PI 환자에겐 부담이 가기 때문에 이것과 관련해선 선생님들에게 강하게 이야기를 한 적도 있다.


 며칠 전에 KI에서 fluid volume 좀 맞춰 달라며 인계가 왔었다. 이러한 인계 사항이 무슨 의미인지 그리고 어떻게 해달라고 하는지 이해하는 데엔 문제가 없지만 회복실에서 환자 이송을 도와주는 기사님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우리 회복실 선생님은 병동에서 인계받은 내용을 그대로 기사님께 설명을 하길래 내가 둘이 있을 때 다시 설명해 드렸다. 


[신장 내과나 호흡기 내과, ICU 같은 경우엔 수액이 들어가는 양도 되게 중요하거든요. 이번에 신장 내과 병동에서 연락이 왔는데요 신장이 안 좋은 사람들은 갑자기 수액이 많이 들어가면 신장에 무리가 올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한 번씩 회복실로 올 때 수액을 틀어놓는 선생님들 있잖아요. 그걸 우리가 잡아 내면 됩니다. 찾기만 하면 제가 그 방에 가서 바로 그냥 확 마...]


 같이 일하는 기사님에게 웃음을 주고 정시 퇴근을 꼭 하자며 이야기하며 얼버무렸다. 선생님들은 왜 네가 회복실에서 일하는 날엔 기사님이 더 많이 도와주냐며 물어본 적이 있었다. 내가 한 설명 때문인지, 일을 빨리 끝내고 정시 퇴근을 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내 모습이 불쌍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기사님은 내가 일하는 날이면 보통 때 보다 더 열심히 일을 하며 업무의 마무리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 OO 이가 일하면 내가 진짜 열심히 도와준다며 스스로 이야기를 한 적도 있었으니까. 내가 쓴 글들만 하더라도 전공자나 동일 업무 종사자가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사실 쉽게 풀어서 설명을 덧붙이기엔 무리가 있는 내용도 있었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제 최대한 의학용어를 자제해서 글을 쓰도록 노력해야지. 의학용어로 차있는 글들은 내 넋두리거나 내시경실에서 일하는 선생님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일 테니 그러한 글들을 제외하곤 쉽고 알차게 쓰도록 해야겠다.


P.S - 이전에 썼던글을 각색하여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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