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지 않는 내시경실의 규정을 만들다.
50대의 한 남성이 내가 맡은 방에서 내시경을 했다. 진정(수면) 내시경으로 하지 않고 비진정(비수면)으로 내시경을 진행했는데, 위를 펴기 위해 공기를 넣고 내시경을 요리조리 움직여도 트림 한 번을 하지 않았다. 싫은 내색은커녕 흔한 구역질 한번 하지 않고 검사를 끝내게 된 것이다. 내시경은 왼쪽 방향으로 돌아누워서 진행하게 되는데 내시경을 제거하고 입에 물고 있는 마우스피스를 빼고 환자분의 입을 닦고 마무리를 했다. 내시경 세척 티슈로 내시경을 닦고 내시경안에 이물질 제거와 균 배양을 막기 위해 소독액을 통과시키는 작업을 위해 바삐 움직이는데 검사를 받은 분의 헤어스타일이 이상했다.
그림 실력이 저질이라 완벽하게 전달할 순 없지만, 딱 이런 느낌이었다. 가발이 돌아가서 22세기 스타일이 돼버린 거다. 처음 내시경실에 왔을 때엔 가발이란 것을 전혀 알 수 없을 정도의 맞춤형 가발이, 검사를 하면서 가발이 돌아가기 시작해서 검사가 끝날 무렵엔 90도 가까이 돌아가버렸다. 이젠 누가 봐도 가발이란 걸 알 수 있었다. 환자분께 내시경실 한쪽에 비치되어 있는 세면대를 보고 매무새를 정리하면 된다고 완곡하게 부탁드렸다. 그래야지 거울을 보고 자신의 가발이 심하게 돌아갔음을 알고 고칠 테니까. 하지만 그분은 단호했다.
[아이고, 선생님들이 너무 깔끔하고 편하게 해 주신 덕분에, 뭐 정리할 게 있나요. 바로 나가면 되죠?]
그냥 가선 안된다. 반드시 거울을 봐야 했고 검사를 받은 당사자가 자신의 구레나룻이 미간 아래까지 들어와 버렸다는 것을 알아야 했다. 미간 사이의 머리카락이 어느 정도 보일 거라 생각은 했지만 검사를 받은 분은 그 머리카락이 눈에 띄지 않았나 보다. 더 큰 사단을 막고자 결심을 하고 이야기했다.
[OOO 님. 저희 병원은 내시경실 규정상 검사가 끝난 후엔 검사실 내에 있는 세면대에서 복장 정리와 손소독을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불편하시더라도 협조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가발을 고쳐 쓰는 모습을 보지 않기 위해 애꿎은 컴퓨터 화면만 쳐다보고 있었다. 아마 1분 남짓의 시간이었겠지만 나에겐 너무나 긴 시간이었다. 존재하지 않는 내시경실의 규정은 이렇게 만들어지는구나.
P.S - 이전에 썼던 글을 수정해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