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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국 Oct 15. 2023

수컷은 그녀에게 수작을 걸지 않는다.

노래방에서 첫곡으로 고해를 부르는 남자

 나를 몇 마디 단어나 문장으로 정의 하긴 쉽지 않다. 짧게 표현하는 것은 어렵고 쉽게 나타내는 것은 더 어렵다. 쉽게 설명하는 사람은 그만큼 내공이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나를 설명해 버리면 나는 그 틀에 갇히게 된다. 나라는 그 표현에, 언어에 매몰되는 것이다. 한때 비트겐슈타인을 좋아하긴 했지만, 조르바를 만난 뒤론 철학적인 물음에서 벗어났다. 도망친 건지, 우스워진 건지 모르겠다. 우리에겐 춤이 있고 노래가 있고 해가 뜨는 장면을 볼 수 있는 눈이 있다. 조르바는 온몸으로 삶을 살아냈다. 그의 행적을 쫒다 보면, 내가 얼마나 얼치기로 살아왔는지 느낀다. 이야기가 엇나가긴 했지만, 결론은 자신을 표현하고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


 20대 때엔, 나 스스로를 이렇게 표현한 적이 있었다.


<노래방에서 고해를 부르는 남자>


더 나아가서 이렇게도 표현했었다.


<첫곡으로 고해를 부르는 남자>


 첫 만남에 노래방을 가서 고해를 불러재끼는 넘이라니. 지금 생각해 보니 맛이 간 것 같다. 물론 임재범의 고해는 남자들의 18번이었다. 그런데 첫곡으로 이걸 부른다? 노래방의 분위기는 락커들이 그녀를 찾는 절규의 현장으로 바뀐다. 굳이 첫곡으로 고해를 때리는 남자는 뭔가 지맘대로 살면서 자신의 기분만이 소중한 놈 같다. 아니면 정말 사랑에 미쳐서 남들은 안중에도 없는 그녀만을 위한 남자 같기도 하다. 물론, 이건 나를 스스로 표현해 본 것이기 때문에 남들이 보는 내 모습은 다를 수 있다. 남중, 남고, 공대, 군대의 테크를 완성해 온 나에게, 고해는 숙명과도 같은 곡이었다.


 과거의 수컷들은 그녀를 생각하며 울부짖었다. 어디 그녀에게 건방을 떨며 별 보러 가자며 수작을 걸 수 있단 말인가? 가수 적재를 좋아하지만, 로맨틱이란 단어는 수컷들에게는 허울 좋은 단어일 뿐이다. 가사에서 절규하는 남자의 땀 내음이 느껴진다.


<고해>


어디에 있나요

제 얘기 정말 들리시나요

그럼 피 흘리는

가엾은 제 사랑을 알고 계신가요

용서해 주세요

벌하신다면 저 받을게요

허나 그녀만은

제게 그녀 하나만 허락해 주소서


 피 흘리는 내 사랑을 위해 이 정도는 해야 한다. 그녀를 얻기 위해 벌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 그녀 하나를 허락해 주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 내레이션도 가슴을 후벼 판다.


제게있어 그녀는

단 하나의 길임을 용서 하소서

제게있어 그녀는 아침이며

제게있어 그녀는 생명임을 용서하소서

제 자리가 아님을 알며

감히 그녈 탐함을 용서하시고

그래도 후회하지 않음을 용서하소서

이건 제 뜻이 아니었으나

오히려 감사함을 용서하시고

또 용서하소서

당신이 가르친 사랑을 그녀앞에

제가 놓게 하시고

사람의 그 절망과 허무는 제게 버려

그녀 앞엔

아름다움만이 있게하소서


 남자가 봐도 멋지다. 요즘 친구들에게 고해를 부르고 고백을 하면 정말 부담스럽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남자 아기, 어린이, 소년, 청년, 중년, 장년, 어르신분들께 건방지게 이야기해 본다. 정공법이야 말로 최고의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돌려가며 별이나 보러 가자고 수작 부리지 말고, 그녀를 달라고 울부짖어라. 그러면 그녀의 마음을 GET 하는 건 시간문제!


P.S - 참고로 와이프는 고해 부르는 거 질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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