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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국 Feb 13. 2024

간호사라면 더 나은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라떼는 말이야…


 며칠 전에 후지사의 더블벌룬을 이용하여 경구하 풍선소장 내시경을 시행한 적이 있었다. 두 곳의 대학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했지만 포커스를 찾지 못하였고 이후에 캡슐내시경으로 출혈 부위를 찾았지만 내시경으로 접근이 불가능하여 치료를 실패한 사람이었다. 캡슐 내시경에선 십이지장을 지나고 나서 약 10분 뒤에 출혈 부위를 발견했었다. Proximal jejunum(공장, 빈창자로 불림)에서 출혈이 있어 보였고 CT에선 명확하게 보이진 않았다. 우리 병원에 있는 더블벌룬을 사용한다면 출혈 부위로 접근이 가능할 것 같았다.


 소장내시경은 환자도 의료진도 모두가 힘들다. 올림푸스 사의 싱글벌룬을 사용했을 때는 빈창자까지 도달하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내시경을 정렬하고 단축하다 보면 빠지기 일쑤였다. 후지사의 더블벌룬은 단축 시에 점막을 고정해 준 뒤, 두 개의 풍선을 번갈아 팽창시켜 진입한다. 숙련된 의료진이 사용하면 싱글 벌룬보다 더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간에, 나는 내시경실에서 소장내시경 케이스를 가장 많이 한 사람이고 더블벌룬이 처음 들어올 때도 사용 영상을 올린 간호사였다. 제조사의 설명과는 별개로 케이스를 경험해 갈수록 노하우는 쌓여갔다.


 내가 더블벌룬을 장착하고 준비하는 것은 일도 아니지만, 이러한 검사는 흔치 않기 때문에 메인 간호사들이 직접 장착하도록 독려(?) 한다. 컨퍼런스에서 더블벌룬 소장내시경 사용법을 발표한 간호사가 설치법을 알려주는데 한숨이 절로 나온다. 발표한 선생님도 나에게 방법을 묻고 발표 자료를 만들었지만 많이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준비하는 행위가 어떤 의미인지 모르고 있었다. 둘이서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다가 참지 못하고 참견을 하게 되었다.


[선생님들. 캡을 앞에 씌워야 하니까 벌룬을 고정하는 고무줄을 약간 뒤로 해야 합니다. 그리고 캡을 씌우고 나서 고무줄을 고정해야죠. 건이 생각보다 직경 넓어요. 그리고 에어가 들어가는 위치가 어디예요? 필터 에어 쐈어요? 그리고 너 발표할 때 내가…]


 그리고를 몇 번이나 이야기했는지 모른다. 더블벌룬이 작용하는 메커니즘과 간호사 두 명이 어떻게 어시스트를 해야 하는지 간단하게 알려주었지만 애살있게 묻는 간호사는 없었다. 사실 어시스트를 하는 간호사가 하는 매뉴얼은 정해져 있다. 하지만 조금의 차이가 큰 차이를 만들고 환자와 시술자들에게 도움이 된다. 내가 가진 노하우와 방법을 알려주긴 하지만 시큰둥하게 받아들이면 나도 가르쳐줄 마음이 싹 가신다.


 소장내시경을 시행한 지 한 시간도 안되어 소장 내 출혈 부위를 찾았다. 클립은 마음대로 되지 않고 내시경도 쉽게 조절되지 않았다. 메인 간호사가 액세서리를 이용해서 출혈지혈술을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내가 클립을 하고 액체 지혈제를 통해 출혈부위를 잡았다. 나도 모르게 같이 일하던 메인 간호사에게 이야기했다.


[선생님. 진짜 뿌듯하지 않아요? 우리가 저 출혈 부위를 찾아서 지혈을 했잖아요. 더 이상 클립을 할 곳도 없을 정도로 클립핑하고 예방적으로 지혈제까지 도포했고요. 무엇보다 다른 대학병원 두 군데에서도 하지 못한 걸 우리가 한 거예요.]


 시술을 함께한 교수님도, 실습에 참관한 의대생에게 지금 케이스가 어떠한지 설명해 주었다. 출혈의 위치를 모르기 때문에 외과적으로 절제를 하는 것도 위험 부담이 크고 환자의 기왕력과 컨디션을 봐도 수술이 힘든 환자였다. 시술이 끝나고 나서 P교수님에게 자랑을 했다. 매번 나에게 알려주고 가르쳐 주시는 교수님은 무서운 분이 아니고 고마운 분이다. 내시경실에서 P교수님께 유일하게 자랑을 하는 간호사라며 놀라워한다.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게 알려주고 이끌어주기 때문에 무섭다기 보단 고마운 분이다. 그러니 먼저 인사를 드리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하게 된다. 나에게 촐싹대지 말고 무게감을 가지라고 이야기하시지만 이번 케이스는 칭찬도 해주셨다. 이러한 힘든 케이스는 하더라도 결과가 좋으면 피곤함도 가시고 오히려 힘이 난다. 내가 도움이 되어 누군가에게 이로움을 줬다는 것만으로도 큰 기쁨이 되는 것이다. 간호사로 살면서, 더 나은 사람이 된다는 것은 다른 누군가에게 더 나은 삶을 주는 게 아닐까?


P.S - 라떼는 말이야, 퇴근하려는 간호사 선생님께 묻고, 마치고 전화해서 또 물어보고 했어. 물론 지금은 내가 제일 퇴근을 빨리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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