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이틀을 아들과 함께 보내면서 상대성이론을 몸소 느낀다.
주말 이틀을 아들과 함께 보내면서 상대성이론을 몸소 느낀다. 시간과 공간은 상대적이다. 아들과 보내는 주말은 시간이 멈춘 듯하다. 그래서 장모님 댁도 가고 동물원도 다녀왔다. 장모님은 내가 힘들어한다는 것을 잘 알기에 아들을 맡겨두고 잠시 쉬다오라고 하신다. 낮잠을 자고 쉬고 싶었지만 집에 밀린 청소와 빨래, 인테리어를 비롯한 이사 준비를 해야 했다. 평일은 일정 때문에 바빴지만, 주말은 아들과 함께하기에 더 힘들다. 바쁜 게 아니라 힘들다. 이사와 인테리어 때문에 몇 번은 나서야 하지만 아들이 있으니 이동하기가 쉽지 않다. 집수리와 이사문제만 없더라도 아들을 돌보는 일은 수월 했을 거다. 자택근무를 하며 아들을 혼자 보다 보니 몸과 정신은 소진되고 있었다.
아내가 주말마다 나가자고 하는 이유가 있었다. 집에만 있으니 시간이 가지 않아서였구나. 집에서 육아만 하는 게 뭐가 힘드냐고 거들먹거리는 놈들은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한다. 그런 말을 뱉는 녀석은 열이면 열 육아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녀석이다. 일도 하고 있고 육아도 경험한 남자의 입장에서 육아난이도를 알려준다.
혼자 하는 육아 > 퇴근 후 육아> 일만 하기
이 순서다. 지금은 일과 육아를 혼자 하는 초고난도의 삶을 영위하고 있지만 이제 이틀만 지나면 아내는 돌아온다. 그리고 그다음 날 이사를 한다. 맞춘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일정이 만들어진다. 이렇게 일이 해결되고 풀려서 좋긴 하지만, 번아웃처럼 내 몸 안의 무언가가 고갈되고 있다.
아들은 만 3세를 눈앞에 둔 흔히 미운 네 살이다. 요즘은 미친 네 살이라는 표현도 종종 보인다. 스스로 하고 싶어 하지만 몸은 따라주지 않고, 자존심은 있으니 성질을 부린다. 소리를 지르는 엄마는 무서워하지만 아빠는 무서워하지 않는다. 며칠 전, 나에게 크게 혼났지만 아들은 여전히 장난을 치고 말을 듣지 않는다. 아들이 내 말을 한 번만에 바로 알아듣고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로또 1등 당첨을 기대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나도 한 번만에 바뀌지 않는다. 그런데 만 3살의 남자아이가 내 말 한마디에 변한다고? 눈앞에 티라노 공룡이 있고 초콜릿이 있는데 그걸 내려놓고 잠을 자야 한다고? 내가 생각해도 아빠의 말은 영향력이 없다. 그러니 달래 가며 할 수밖에 없다.
[우리 그림자 놀이 하자. 아빠 그림자 놀이하면서 티라노 만들 거야.]
살짝 피곤해하는 아들의 표정을 캐치해서 불을 끈다. 우선 불을 끄고 수면을 위한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다짜고짜 꺼버리면 꼬장을 부리고 안 잘 거라며 오히려 각성을 하기 때문이다. 그림자놀이를 하고 공룡과 거북이 이야기(육식 공룡 벨로키랍토르와 거북이가 육지와 바다에서 경주를 하는 내가 만든 이야기다. 모사 사우르스와 다른 공룡들도 나오는데 10분은 소요되는 대 서사시이다.)를 한다. 아들에게 넨네시간이니 잘 자라고 이야기를 해도 20분에서 30분은 뒤척인다. 장난도 치고 나에게 오고 일어서기도 한다.
일주일 넘게 육아를 하면서 느끼는 점은 육아는 하면 할수록 어렵다는 것이다. 아내와 내가 함께 있을 때는 시우도 혼자서 놀고 시간을 보냈지만, 나만 있으니 무조건 아빠와 함께 시간을 보내려 한다. 아들은 어린이집에서 아빠랑 했던 일들을 이야기하고 아빠 자랑을 매번 한단다. 원생 중에 아빠이야기를 제일 많이 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뿌듯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 수많은 아이들은 엄마만 찾는다는 뜻이다. 워킹맘도 있고 전업 주부도 있겠지만, 아이들을 돌보는 엄마의 모습을 상상한다. 내가 느끼는 번아웃을 엄마들은 매일 느낄 것이다. 미래에 대한 더 나은 비전이 보일 때, 인간은 인간답게 살 수 있다. 그 미래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현실이 힘든 것이다. 그러니 산후 우울증이 생기고 지쳐가는 것이다. 내가 오버해서 이야기하는 거라고? 딱 주말 이틀만 육아를 했으면 한다. 티비랑 핸드폰이 아닌 함께 노는 그 시간을 말이다.
P.S - 아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힘들지만 즐겁다. 고마운 아들. 고마운 아내. 그리고 이런 삶을 주신 부모님과 하나님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