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들이 맞구나.
[저기 하늘 색깔이 이쁜 이유는 해가 지고 있기 때문이야.]
[왜? 왜 해가 져?]
차에서 노을이 지는 모습을 보고 아내가 이야기했다. 만 3세가 지난 아들은 ‘왜?’와 ‘싫은데’라는 표현을 제일 많이 한다. 와이프는 해가 진다는 표현부터 설명해야 했다. 그래서 아들에게 다시 이야기했다.
[해가 이제 쉬러 들어가는 거야. 이제는 달이 나올 거야.]
[왜?]
[낮에 일을 하고 이제는 달이 일을 하러 올 거야.]
[근데 달이 너무 작다. 왜 작아?]
아들의 왜? 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이제는 내가 대답할 차례다. 아내는 아들의 왜?라는 질문을 힘들어한다. 나는 시우가 세상을 궁금해하는 게 신기하고 재밌다. 어린 아들의 시선에서 잊고 있던 소중한 사실들을 발견하니까.
[지금 보는 달님은 부끄러워서 그래. 좀만 있으면 완전히 숨어서 못 볼걸?]
이렇게 답변했지만, 초승달이 왜 저녁에만 잠시 비추는지, 달의 공전을 이야기하고 바닷물이 들고 나는 이유를 만유인력의 법칙과 함께 설명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다. 아직은 그 누구도 그러한 TMI(too much information)에 대해 관심이 없다. 하지만 아들은 어떨까? 나의 외모와 행동을 쏙 빼닮았기 때문에 아들과는 조만간 함께 논의할 날이 올 것이다. 아들의 머리가 영글고 과학이라는 그 짜릿한 맛을 느끼고 나면, 자기도 세상을 새롭게 볼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은 왜라고 묻지 않았다. 비행기가 지나가고 있어서 비행기가 있다며 화제를 바꿨기 때문이다.
나라면 어떻게 이야기했을까? 해가 지는 것은 지구가 자전을 해서다.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선 시우가 중학생이 되어야 가능하다. 달의 크기가 작은 이유는 달이 지구를 공전하고 있으며 그것은 만유인력을 이야기를 해야 한다.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선 시우가 고등학생이 되어야 가능하다. 해가 나고 지는 것을 선험적 종합판단을 이야기하고 그러한 물자체에 대한 인식과 현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면? 시우가 대학생은 되어야 가능하다. 왜 자전을 하고 왜 태양이 있는지 논의를 한다면? 그건 내가 답 할 수 없을 것이다. 신만이 알 테니까.
아들의 이러한 호기심과 왜?라는 질문이 반갑다. 나는 내가 질문하고 궁금해했던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듣지 못했다. 어렸을 적엔 백과사전만이 유일한 정답지였다. 지금은 검색엔진에 AI까지, 알고자 한다면 세상 모든 지식을 알 수 있는 세상이다. 이러한 세상의 지식들을 단계적으로 아들과 찾아가야겠다. 행복이란 게 멀지 않다. 나를 닮은 아들이 나와 같은 의문을 가지는 것을 보는 것이다. 뿌듯함과 고양감을 매일 느낀다. 그리고 대화를 마무리 짓는 방법까지 나를 쏙 닮았다.
[저기 비행기 날아간다. 예전에 서아랑 비행기에서 젤리 나눠 먹었지. 아빠. 젤리 먹자.]
의식의 흐름대로 말하는 너. 내 아들이 맞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