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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국 Jun 10. 2024

나 속상해.

내 이야기를 들을 생각이 없는데 왜 매번 대화를 하자는 걸까?


 아내는 금방 화를 내고 삐진다. F의 성향이 짙은 편이다. 나를 만나고 T처럼 변했다나? 아내와 점심을 맛있게 먹고 차에서 이야길 나눴다. 어떤 내용인지 모르겠지만 아내는 입을 삐죽거리며 속상하다는 말을 했다. (시간이 지나고 집에 도착해서 물어보니 자신이 왜 속상했는지 모르겠단다.) 어떤 부분에서 속상한지 알지 못했다. 매번 속상해하고 매번 삐지는 아내.


[나, 속상해]


나는 어떤 대답을 했을까?


1. 속상하게 해서 미안해. 내가 더 잘할게

2. 왜 속상해? 아들이 힘들게 해?

3. 카페 들러서 디저트 먹고 이야기할까?

4. 속상하지 않게 받아들이는 관점을 바꾸면 돼.


 나는 어리석게도 4번을 이야기했다. 당연히 전쟁이 시작되었다. 아내는 자신의 속상함을 알아 달라는 의미로 말을 했는데 관점을 바꾸라는 대답을 듣고 나서 말문이 막혀버렸다. 장난반 진담반으로 자신의 속상함과 서운함을 이야기했는데 관점을 바꾸라고? 말인지 빵구인지 모르겠단다. 아닌 것을 고르는 거라면 가장 적합한 답이었을 테지만, 나는 당당히 4번을 이야기했다.



  아내는 자주 화를 낸다. 내가 하는 행동이 마음에 안 들기도 하고 육아에서도 도움이 되지 않을 때가 많단다. 아들에게 밥 먹고 나서 바로 과자를 주고 같이 젤리를 먹고, 길에서 노래를 크게 부르고 일부로 방귀를 소리 내서 뀌고… 이 모든 것들이 교육에 좋지 않다는 것이다. 내가 하는 장난과 말투를 아들이 따라 한다는 것이었다. 아니 이렇게 내 모든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도 놀랍지만 그러한 일들이 이렇게 화를 낼 일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나는 아내에게 화를 잘 내지 않는다.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러려니 할 뿐이다. 사람은 쉬 고쳐지지 않는다. 끝없는 잔소리를 하고 변화의 필요성을 이야기해도 표면적인 것들만 바뀔 뿐이다. 그런데 아내는 내가 변하길 바란다. 나는 아내에게 변화를 종용한 적이 없다. 내가 화를 내고 정색하고 같이 짜증 내봐야 되는 것이 없다. 근거 없는 효소나 영양제를 소비하거나 학습에 대한 의지박약등을 짚고 싶지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고 그렇게 믿는구나 하고 넘길 뿐이다.


 아내는 내가 이러한 태도를 보이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어려서 그런 건지 원래 그런 건지 알 수 없다. 직장에서 환자와 보호자를 대하는데 타협이 없고 최선의 결과를 위해 노력한다. 동료 의사와 간호사들을 다그치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상대의 건강과 목숨이 달려 있으니까. 가정에서 아빠이자 남편의 역할을 대하는 태도는 내가 직장에서 동료 간호사와 의사들에게 요구하는 것과 동일했다. 그렇지 않고선 이렇게 나에게 잔소리를 계속할 순 없을 테니.


 이렇게 다투고 나면 남는 것은 없다. 메시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떻게 내가 말했는지 메신저만 기억할 뿐. 더 놀라운 것은 내가 아내에게 관점을 바꾸면 된다고 그렇게 이야기를 해도 내 이야기를 들을 생각이 없다. 화를 안 내도록 방법을 알려준다는데도 듣지 않는다. 해결책을 바라지 않으면서 묻는 이유는 뭘까? ‘그냥 내 감정에 호응만 하고 해결책은 이야기하지 마’라고 초반에 명제를 깔고 이야기를 하는 게 낫지 않을까?


P.S - 내 이야기를 들을 생각이 없는데 왜 매번 대화를 하자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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