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언제나 곁에 있지만 우리는 인지하려 하지 않는다

by 돌돌이

만 30세. 아이 둘의 엄마. 흔히 말하는 위암 말기였다. 전이로 인해 여러 증상이 나타나고 위와 십이지장 접합부가 좁아져서 식사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나이 드신 분들이 암으로 고생하고 생을 끝내는 것과는 별개로 30대, 20대 분들이 말기암으로 죽음을 기다리는 것을 볼 때면 나 또한 우울해진다. 유튜브의 유병장수걸이나 내 사촌동생 또한 암투병으로 고생하고 있다. 암은 어디서 오는지, 왜 왔는지, 우리의 죽음은 누가 결정하는지 모르겠다.



해맑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나이에, 비위관을 하고 수액을 주렁주렁 단채로 휠체어에 의지해있는 그녀를 본다. 죽음은 언제나 곁에 있지만 우리는 인지하려 하지 않는다. 애써 무시하려 해도 병원에서 일하다 보면 죽음을 무시하지 못하게 만든다. 암이 진행되어 수술이 불가능한 그녀는, 처음 내시경을 하러 왔을 때 보다 살이 많이 빠져있었다. 항암치료를 해도 병변은 줄어들지 않고 막혀 있는 부분을 스텐트로 확장술을 시행해도 식사는 하기 어렵다.


있는 모습 그대로, 건조하게 보이는 사실만 적는 것이 어려워진다. 나도 모르게 감정을 이입하고 지나가는 휠체어를 빤히 바라본다. 그녀를 마주해서 보다가 두 어린아이들을 떠올려 본다. 내가 사라진 후에, 아이들의 모습은 어떨까? 나와 아내의 부재는 두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아빠랑 놀고 나서야 잠을 자러 들어가는 아이들에게, 저녁시간이 가지는 의미는 어떻게 변할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면 왜?라는 생각에 봉착한다. 왜, 그녀에게 죽음을 드리우게 했으며 왜 어린 두 아이는 엄마 없이 살아가야 하며, 왜 나는 죽음을 생각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는 걸까? 나와 너의 경계가 무너진 것이다. 엠마뉘엘 레비나스가 이야기한 것처럼 나는 타자의 얼굴을 마주 하고 나서 그 무한에 가까운 삶의 무게에 짓눌리게 되었다. 단순히 병명과 증상으로 이해하고 애써 무시하려 했던 내가, 그녀를 보며 책임감을 느끼게 된 것이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얼마일까? 다시금 내가 낭비한 시간들을 상상해 본다. 그리고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한번 생의 소중함을 실감한다. 내일이 오기 전까지, 나는 수많은 갈림길에 서있다. 일상이라 치부하며 무시해 온 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피곤하고 힘들다며 아이들에게 목마를 태우다 만 시간들이 떠오른다. 아내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는 시간도 소중하다. 오늘도 아이를 재우고 아내와 함께 분리수거를 하러 나갈 것이다. 차가운 겨울공기 속에서 우리는 소소한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편의점에 들러서 간식거리를 손에 쥐고 서로의 존재를 마주 보고 위안 삼을 거다. 나는 한없이 약하고 부족한 존재이지만, 가족은 내 연약함을 숨길 수 있는 공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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