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도 있고 아이도 생겼지만 난 여전히 방황 중이다. 더 나은 미래가 아니라,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일을 찾느라 혈안이다. 취미를 해보는 게 어떻냐며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고, 아이 보느라 시간도 없을 텐데 세월 좋은 소리 한다며 핀잔을 주는 사람도 있다. 사람은 자신의 시야에서 만 삶을 보기에, 그들의 이야기들과 조언은 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나 또한 내가 만든 관점에서 세상을 보고 듣고 있기 때문이지. 지금 일하는 곳에서 경력이 쌓이고 시간이 지나면서 습득되는 지식과는 별개로 내가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한 기억은 없다.
부모님과 와이프는 안정적인 삶을 원한다. 가장이고 책임져야 할 식구가 있으니 당연한 말이겠지만, 이렇게 삶을 이어 나가는 것이 맞나 싶다. 인생에 맞고 틀리고가 어딨으며 정답도 없겠지만, 지금은 살아낼 뿐이다. 그냥 주어진 선택지에서 내가 생각한 정답을 골랐을 뿐이다. 주어진 삶은 객관식이었고 그 객관식 문제들의 답들을 고르다 보니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정답은 모른다. 주어진 선택지에 따라 삶이 바뀌었기 때문에 더 좋고 나쁨만을 상대와 비교해서 가늠할 뿐, 정답은 어디에도 없다. 확실한 건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주어진 선택지에서 고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답을 쓰는 주관식과 서술형을 하고 싶다는 점이다.
하고 싶은 일과 미래의 모습이 명사가 되어선 안되는데, 난 언제나 명사였다. 좋은 직장, 참한 와이프, 좋은 아파트, 좋은 차, 돈, 명예 등등등. 나에게 인생은 명사다. 살아 숨 쉬고 언제나 역동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 동사가 아니었다. 그래서 이 나이가 되도록 고민하고 갈팡질팡하고 있다. 여러 선택의 기로에서 내가 했던 선택들이 최악인 경우도 있었고 차악인 경우도 있었다. 그 선택들의 합이 지금의 나일 테니, 후회하고 자책하진 말아야 한다. 지금보다 더 나은, 더 발전하는 모습을 찾아야 한다.
나에게 큰 시련과 고난은 없었다. 그냥 무난하고 평범하게 직장 생활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3년 안에, 난 직장을 그만 둘 거다. 와이프는 당연히 싫어할 것이고 걱정하겠지만 내가 한 선택들에 대해선 크게 반대하거나 걱정하지 않는다. 대학병원을 나오면 간호사가, 특히 남자 간호사의 선택지는 줄어든다. 나이도 있기에, 소방공무원을 하기도 애매하고 연차와 경력과는 별개로 크게 쓰일 곳을 찾기란 쉽지 않다. 나이는 먹어도 여전히 철이 없는 생각이라 치부하기엔, 철이 너무 무겁다. 인생이 너무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