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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맛에 맞는 미용실을 찾는 일

by 돌돌이


입맛에 맞는 미용실을 찾는 일은 쉽지 않다. 아이스크림이나 과자처럼 새로운 제품을 도전하는 것처럼 미용실에서 새로운 스타일로 머리를 깎고 나서 삶의 질이 떨어지고 사람들의 비난과 비웃음을 사는 경우도 많았다. 중고딩일땐 머리 길이의 규정이 있었기 때문에 학교 근처 미용실을 자주 이용했다. 그곳에서는 규정에 맞는 양상형 헤어스타일을 만들어 줬고 다들 동일한 헤어스타일을 유지했기 때문에 미용실 선정은 중요치 않았다. 남중 남고에선 다들 스포츠에 상고머리였지만 졸업을 하고 나선 달랐다. 미용사의 실력이 이성친구를 만드는 데 꽤 많은 지분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블루 XX이나 동네 미용실에서 귀두 컷으로 머리를 잘랐다면? 오히려 삭발이나 백고 머리는 개성이 있고 임팩트 있지만 귀두 컷의 트라우마는 오래간다. 외모에 관심이 많고 가진 옷은 촌스러운데 머리까지 귀두 컷이라면 이성 교제는 물 건너 간 것이다.


작은아버지와 삼촌이 미용사이고 큰 아버지가 이발사이다. 어렸을 때 머리는 무료로 잘랐었고 머리를 자르고 나면 용돈도 받아서 기분이 좋았다. 큰아버지는 전형적인 상남자 스타일로 내 머리를 잘라줬기 때문에 작은아버지 미용실에서 머리를 잘랐다. 대학생이 되고 스타일에 신경을 쓸 때쯤엔 삼촌 미용실로 가서 최신 스타일로 머리를 하곤 했다. 철이 들고 나이를 먹으면서 사촌들의 미용실은 가지 않게 되었고 덕분에 미용실 선정에 애를 먹기 시작했다. 마음에 드는 미용실은 찾기 힘들었고 마음에 들고 적응했다 싶으면 미용사분이 미용실을 옮기거나 그만두기도 했고 가던 미용실이 폐업한 적도 있었다.


결혼을 하고 이사를 오면서 기존에 다니던 미용실과는 인연이 다하게 되었다. 내 머리를 전담해 주던 미용사분이 결혼을 이유로 미용실을 관두게 된 것이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집 근처 미용실을 다니고 있지만 만족은 되지 않았다. 파마와 같은 큰(?) 이벤트는 번화가의 미용실에서 하기도 했지만 투블럭의 특성상 한 달 만에 옆머리와 뒷머리가 자라기 때문에 집과 가까운 미용실은 필요했다. 기쁨이가 태어나고 퇴근 후 육아를 병행하고 있었고 시간을 내서 번화가에서 머리를 자르고 쇼핑을 할 엄두는 꿈도 못 꾸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만족스러웠던 곳을 고정해서 미용을 받고 있었는데 아파트 상가에 남자 전용 미용실이 생겼다. 커트 비용과 파마 비용이 더 쌌기 때문에 걱정이 되긴 했지만 지금 다니는 곳도 만족스럽지 못했기 때문에 그곳을 방문하기로 했다.


생긴 지 3일 된 미용실의 내부는 여느 미용실과 다르지 않았지만, 인테리어에 큰 공을 들이진 않아 보였다. 햄버거로 끼니를 때우고 있는 미용사분이 마지막 한 조각을 급하게 욱여넣으며 나를 맞이했다. 내 머리 스타일을 보고 투블럭인지 묻고 몇 미리로 자를 것인지 물었다. 난 7mm로 대답했고 그렇게 미용은 시작되었다. 사담은 없었고 파마를 언제 했었는지 묻는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앞머리 길이와 옆머리 커트의 방향을 묻고 답한 것이 전부였다. 파마를 하러 가 선 무조건 졸거나 잔다. 요즘은 커트만 해도 졸 때가 많았다. 내가 졸려고 시동을 걸기도 전에 커트는 끝나있었다. 미용 후 머리를 감겨주는데 시원하게 빨래 빨듯이 빡빡 감겨주는데 작은아버지의 손놀림도 생각나고 두피 마사지도 되는 것이 시원하고 좋았다. 드라이 후에 앞머리의 기장을 손본 뒤 미용은 끝났다.


남자들이 바라는 미용실의 대부분을 충족시키는 곳이었다. 앞머리는 기장을 조금 더 쳐도 되냐고 물으면서 능숙하게 머리를 자르는 미용사분을 보면서 쭈뼛쭈뼛 거리는 사춘기 소년들부터 그냥 편하게 잘라달라고 말하는 중년 아저씨들까지, 이곳은 만족스러운 공간일 것이다. 물론 미용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거리감을 가깝게 가지고 싶은 이들에게 아무 말 없이 머리만 잘라주는 미용사는 조금 아쉬울 수 있겠지만 그런것을 바라지 않는 나에겐 딱 맞는 곳이다. 원하는 바를 알아서 이야기해주고, 내가 원하는 바도 실수 없이 잘 처리해 주는 곳. 많은 기대를 안 하고 가서 더 만족스러웠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곳은 이제 내가 앞으로 머리를 맡기게 될 소중한 공간이 돼버렸다. 우리 사장님께서 미용실을 폐업하지 않도록 열심히 홍보해야겠다. 동네 장사에 입소문은 가장 중요한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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