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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랑바쌈 Dec 29. 2020

사물이 보이는 것보다 멀리 있습니다

모뉴먼트 밸리를 찾아 떠난 온 가족 천로역정

모뉴먼트 밸리

재작년 겨울 미국 서부 가족여행에서 그랜드캐년에 가기 전 들른 인디언 유적지다.

끝도 없는 평원에 비슷한 모양의 거대한 바위들이 듬성듬성 놓여 있다. 바위의 모양이 하늘로 향한 비석 같아서 모뉴먼트 밸리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저 멀리서 인디언들이 말을 타고 달려올 것만 같다. 서부 캐년 여행 계획을 짤 때 누구나 이곳을 일정에 포함시킬지 망설인다. 동선에서 애매하게 벗어나 있어서 여길 가려면 꼬박 하루를 빼야 하니까. '갈지 말지 고민될 때는 가라, 살지 말지 고민될 때는 사지 마라'는 얘기가 언제부턴가 뇌리에 박혀 있다. 그냥 가보기로 했다. 그렇게 가본 곳들은 늘 좋았고 기억에 오래도록 남았다.


차를 세우고 제일 가까워 보이는 모뉴먼트(바위 비석)를 배경으로 가족과 사진을 찍었다.

정말이지 손을 뻗으면 닿을 듯 가까웠다.

"건아, 우리 저기 위에 올라가서 찍자"

주저 없이, 아들과 나는 눈 앞의 비석을 향해 출발했고, 아내가 두 아이를 데리고 뒤따랐다.

"어 이상하다. 왜 가까워지지가 않지?"

제법 걸었는데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다. 바위 비석은 여전히 그 위치에 똑같은 크기로 서있다.

길은 멀리서 봤을 때 평평한 평지였는데, 다 보니 파도처럼 오르내림의 사이클이 있다. 파도 하나를 넘으면 또 다른 파도가 있고, 넘어가면 또 그다음 파도를 만난다. 비석과의 간격은 계속 그대로다. 세워둔 차는 점처럼 희미해졌고, 멀리서 따라오던 아내와 아이들도 레고 피규어처럼 작아졌다. 남자 둘은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려 선뜻 돌아가기가 어려웠다. 지친 아들이 목이 마르단다. 물을 갖고 왔을 리 없다. 겨울이 아니었다면 힘들었을 것이다.

"돌아갈까?" 아들을 향해 물었다.

아들은 대답 대신 말없이 나를 앞질러 갔다. 나는 뒤를 돌아 아내를 향해 두 손을 휘이휘이 저으며, 더 이상 오지 말고 돌아가라고 소리쳤다. 저쪽에서도 손을 흔든다. 알아들은 모양이다.


사투를 벌이며, 드디어 바위 비석에 도착했다. 마지막 파도를 넘을 때야 우리는 알아차렸다. 저건 바위가 아니라 바위산이었다는 사실을. 바위 위에 올라가 사진을 찍겠다는 생각이 얼마나 무모했는지도. 바위산은 너무 커서 클로즈 샷의 배경이 될 수 없었다. 아쉬움을 달래며 바위산 끝자락에 있는 거대한 바위 하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찰칵 찍었다.

멀리서 보았을 때 이 바위를 돌멩이쯤으로 생각했다 (숨은 그림 찾기: 커버 사진에서 같은 돌멩이 찾기)

아들과 사진을 찍고 잠시 쉬었다 돌아가려는데, 아내와 두 아이들이 다가오는게 보인다. 다들 지쳐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다.

"왜 왔어? 힘들게. 돌아가라고 했는데"

"엥, 난 또 빨리 오라고 손 흔드는 줄 알았지"

뜻하지 않게 온 가족이 거칠고 황량한 서부 사막 투어를 한 셈이다. 그렇게 한참을 바위산 밑에서 노닥거리다가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갔다. 모뉴먼트 밸리의 기운을 잔뜩 받았는지 돌아가는 길은 전혀 힘들지 않았다.


'사물이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습니다.'(Object in mirror are closer than they appear)

자동차 사이드 미러에 적혀있는 경고문이다. 모뉴먼트 밸리에는 정반대의 경고문이 필요할 듯싶다.

'사물이 보이는 것보다 아주 멀리 있습니다'


새총으로 쏘면 맞힐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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