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랑바쌈 Jan 15. 2021

글에 관한 글은 좀 별로라는 고백

글이 작품이 되는 공간?

글에 관한 글을 쓸 때는 항상 부끄럽다. 그것은 좋은 글감이 없을 때 사용하는 임시방편이다. 좋은 글감이 있으면 그것으로 글을 쓰면 된다. 이런 글은 좋고 저런 글은 별로고, 이런저러한 글을 쓰고 싶다는 둥의 얘기를 다시 글로 적는 것은 결국 글감이 없는데 또 글은 적어야겠다는 집착에서 생겨나는 글쓰기 중독현상이라고 나는 본. 담배가 없을 때 종이를 돌돌 말아 입에 물어보기다. 그래서 글에 관한 글은 아무리 잘 써도 다른 글에 비해선 좀 아래로 보는 편이다. 그런 맥락에서 이 글을 별 볼일 없는 글로 보더라도 전혀 억울하지 않다. 물론 글쓰기 코치나 문예과 교수들처럼 글에 관한 글을 업으로 삼는 분들은 예외다.


브런치에 수많은 글이 올라온다. 내용도 형식도 참 다양하다. 통찰과 울림, 해학이 넘치는 주옥같은 글도 있고, 개인적인 일상의 기록도 있고, 그냥 낙서같이 써놓은 글도 있다. 드물지만 싸질러놓은 똥 같은 글도 있다. 현직 소설가, 시인, 평론가들이나 나 같은 평범한 회사원이나 똑같이 작가라는 이름으로 차별 없이 쓸 수 있다는 점에서 브런치는 획기적으로 관대하다. 세상 어떤 문예지에서 평범한 회사원의 글을 실어 주겠나. <좋은 생각> 같은 매거진에 투고해서 채택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다양한 직업과 수준의 사람들이 토해내는 글의 홍수에서 '내가 생각하는' 좋은 글을 가려 읽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구독이란 걸 하지만, 때로는 보석 같은 글을 모르고 지나쳐버릴까 아쉬워 종종 최신 글을 열어본다. 뭔가 있어 보이는 제목을 클릭했는데 "내 꼴리는 대로 쓸란다. 보든가 말든가" 이런 식의 한두 줄로 싸질러 놓은 본문을 마주할 때는 정말 똥을 밟은 느낌이 든다. 적어도 작가 심사를 통과할 때는 그런 마음으로 쓰진 않았을 텐데.


'강원국의 글쓰기'에서 강 씨는 마음이 사람을 향하면 공감, 사물을 향하면 호기심, 사건을 향하면 문제의식, 미래를 향하면 통찰, 자신의 내면을 향하면 성찰이라고 하는데(기억한 내용이라 부정확할 수도), 이들이 글쓰기의 통로라고 했다. 글이라면 이 통로를 거쳐 나오는 게 맞다고 나도 맞장구쳐본다. 소리가 제대로 된 호흡과 성대의 떨림을 통해 나와야 노래가 되듯, 그냥 감정을 여과 없이 쏟아낸 글자가 글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보든가 말든가"가 진심이 아니란 건 확실하다. 글은 보이고 읽히기 위해서 쓰이게 마련이다. 보지 않기를 바란다면 굳이 글자로 옮길 이유가 없다. "보든가 말든가"는 "안 봐주니 정말 짜증 난다"의 다른 표현이다.


가볍게 쓰는 사람도 있고, 무겁게 쓰는 사람도 있다. 나는 꽤나 무겁게 쓰는 편이다. 아내가 그런다. 꼭 그렇게 기승전결 다 갖춰서 써야 하냐고. 가볍게 써도 울림 있는 글이 되면 그렇게 했겠지. 툭 뱉어도 시가 되고 에세이가 되면 그렇게 했겠지. 그럴 능력이 안되니 무게라도 얹으려고 무겁게 쓰는 거지. 맛이 없으면 정성이라도 들여야 음식이지. 무슨 글이 꼭 메시지가 있어야 하고 울림이 있어야 하냐고(내가 뭘 대단히 울림 있는 글을 쓰는 것도 아니지만) 그냥 오늘은 이런 일이 있었다 끝. 이런 일이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나빴다 끝. 브런치에도 이렇게 쓴 글 천지던데 원고료 주는 것도 아닌 일에 왜 그렇게 각 잡고 쓰냐고 타박이다. 나는 칭찬으로 듣는다.


누구는 일기장으로 어떤 이는 낙서장으로 쓸지 몰라도 나에게 브런치는 갤러리다. 작가는 아니지만 '작가'라는 호칭으로 불리고 내가 빚은 작품을 걸어놓을 수 있는 소중한 소통의 공간이다. 그러니 웬만하면 좀 부끄럽지 않은 글을 걸어놓으려 하는 것이다. 저마다 솜씨는 다르지만 자신의 한계에서 최선을 다할 수는 있으니까. 그래서 구독할 작가를 선택할 때도 브런치를 갤러리로 꾸며가는지를 먼저 본다. 글에 대해 그 정도 예의는 갖춘 사람과 소통하고 싶으니까. 똥 같은 글을 싸질러놓고 좀 봐달라는 글을 피할 자유와 권리가 있다. 그러고 보니 브런치의 캐치프레이즈가 "글이 작품이 되는 공간"..소름..


자 이쯤 쓰면, 슬슬 마무리하고픈 유혹에 빠진다. 여기서 발행을 누르면 설익은 글이 된다는 것을 안다. 마지막 한 단락은 좀 더 강한 울림 펀치 한방이 있어야 한다. 대개 이럴 때는 작가서랍에 넣고 하루쯤 묵히면 좋은 한 단락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글쓰기가 오래 걸리는 이유다. 문제는 발행 롸잇나우의 유혹을 떨치기가 꽤 어렵다는 것이다. 게다가 글에 관한 글 따위를 숙성까지 시켜가며 정성을 들이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그저 똥이 되지 않기만을 바라며, 옛다, 발행!



작가의 이전글 노트북 3대로는 택도 없다고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