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를 덮친 기후변화의 재앙

영화 '바람을 길들인 풍차소년'에 나타난 기후변화의 현실

by 그랑바쌈


아프리카 전문가?


서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에서 3년 일했다는 걸로 아프리카 전문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아프리카에 관한 책을 한 권 썼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 게다가 나는 아프리카 전문가로 살아갈 생각도 없다.

그런데, '넌 빼박 아프리카야'라는 소리가 망치처럼 내리치는 순간이 간혹 있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쓰는 영어와 불어를 듣고 국가를 알아맞힐 때.

같은 불어권 아프리카라도 코트디부아르, 세네갈, 기니 불어의 억양이 다르다.

마찬가지로 영어권인 가나, 에티오피아, 케냐, 나이지리아, 잠비아 등은 영어 발음과 엑센트가 다르다.

54개국 국적의 아프리카 직원이 모여 일하는 국제기구(AfDB)에 근무하면서

내가 몸소 익힌 가장 유니크한 African Talent가 바로 발음을 듣고 국가를 구별하는 능력이다.


'바람을 길들인 풍차소년'


아무런 정보 없이, 그냥 넷플릭스에 올라와 있는 아프리카 소년에 관한 영화를 눌렀다.

초반에 한 목사가 설교하는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이 능력은 터져 나왔다.

"어 저건 잠비아 발음인데.."

어찌 그의 발음을 잊을 수 있으랴.. 6개월간 나를 그토록 부려먹었던 잠비아 출신 매니저.

정답은 아니었지만 크게 틀렸다고 하기도 어렵다.

영화의 배경은 말라위.

잠비아와 모잠비크 사이에 자리 잡은 내륙국가다.

아프리카에서도 가난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가난한 나라다.

'왜 내가 이 영화를 못 보고 책을 썼을까..' 후회가 되었다.

영화 전반엔 내가 책에서 말하고자 했던 모순이 절절히 담겨있다.


계절이 홍수와 가뭄 두 개로 나눠지는 나라


우기에는 비가 너무 많아 작물이 모조리 쓸려나가고,

건기에는 물이 없어 아무것도 심을 수 없는 척박한 땅.

누가 아프리카를 농업의 대륙이라고 했던가.

가장 흔한 오해 중의 하나지만, 아프리카는 농업에 적합한 땅이 아니다.

가난하지만 사시사철 과일이 열리고 다모작을 할 수 있는 동남아시아와는 다르다.

가뭄, 홍수가 빈번하고, 토양의 질도 별로다. 비옥한 땅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식량자급을 하고 있는 나라는 거의 없다.

아프리카 국가들의 경상수지 적자를 초래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가 농산품, 특히 쌀 수입이다.


기적을 낳는 교육의 힘


마을 소년 캄쾀바는 가난하지만 교육의 힘을 믿는 의식 있는 부모 슬하에서 해맑게 성장한다.

그해 농사는 기후변화의 직격타를 받았다. 다음 해 우기까지 버텨야 하는데 수확한 옥수수는 두 달치뿐.

가난한 마을 주민들은 우기에 홍수를 막아줄 나무를 자본가에게 팔아버린다.

마을회의에서 추장은 마을의 나무를 지켜야 한다고 외치지만 도리가 없다.

당장 먹을 게 없고 학교 등록금도 마련해야 하니.

(아프리카에선 추장의 말이 법인데, 가난 앞에서는 영이 서지 않는 현실)

캄쾀바는 등록금을 내지 못해 학교에서 쫓겨난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몰래몰래 수업을 듣고 도서관에서 책을 훔쳐본다. 책 제목은 '에너지학 개론'

마을도 학교도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다. 사람들은 굶어 죽고 학교는 문을 닫는다.

소년의 아빠는 곡괭이를 들고 종일 마른땅에 이랑을 판다. 세찬 바람에 먼지만 날릴 뿐.

그나마 창고에 있던 식량도 도둑맞은 캄쾀바 가족. 배급식량으로 하루를 한 줌 한 끼로 때운다.

누나는 '입 하나를 덜었네'라고 적힌 편지를 남기고 떠난다.

가족을 지키지 못한 아버지의 가슴엔 대못이 박힌다.

캄쾀바는 동네 쓰레기 더미에서 버려진 자동차 배터리를 줍는다.

과학선생님이 자전거 타던 모습을 보던 소년은, 페달을 밟으면 핸들 앞 전구에 불이 들어온다는 사실을 알아챈다.

에너지학 개론을 다시 펼친다. 그다음엔 영화다운 기적이 펼쳐진다. (이게 실화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소년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 풍차를 만든다. 풍차에서 생산된 전기는 펌프를 통해 땅속에서 물을 끌어올린다.

지하수가 콸콸 뿜어져 나와 마른땅을 적신다. 환호와 눈물.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영화 사이사이에 등장하는 떠들썩한 대통령 선거유세.

민중의 배고픔과 아우성을 외면하는 여당과 대통령. '너흰 그냥 나만 찍으면 돼'

유세장에서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하는 마을 추장을 경호원들이 끌고 가 구둣발로 짓밟는 현장은 참혹하게 리얼하다.

"민주주의는 수입한 카사바(농작물의 일종) 같아. 빨리 썩지"

캄쾀바의 아빠가 먼발치서 선거유세를 지켜보며 무심코 내뱉은 말이다.

도무지 바뀔 줄 모르는 아프리카 정치에 대한 팩폭이다.

가난, 기후변화, 환경파괴, 민주주의, 정부의 무능, 부정부패, 혁신, 교육, 저축, 농업, 협동정신.

아프리카에 관한 거의 모든 주제들이 이 영화에 녹아있다.

너무 잘 만들어져 가슴이 아린다.

스토리와 메시지, 그리고 배우들의 호연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이지만,

소년의 억양과 표정, 극심한 배고픔과 사뭇 대비되는 여인네들의 원색 치마,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은 교실과 삐걱대는 의자, 마을 구석 쓰레기 더미에서 풍기는 비릿한 냄새까지도 나의 뇌파를 건드리며 감동을 배가시킨다.

난 정말로 빼박 아프리카인 건가.


* 제 블로그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https://m.blog.naver.com/malariaout/222148850866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아프리카는 왜 아직 가난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