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랑바쌈 Mar 25. 2021

진짜 같은 가짜

페라가모 아니라니까요

아끼는 넥타이가 있다. 은은한 광택이 감도는 색 바탕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작은 동물 그림이 촘촘한 패턴으로 박혀있다. 원색이지만 촌스럽지 않고, 격조가 있는 것이 딱 보기에도 바로 그 명품 브랜드다. 잘 모르는 사람도 너무 예쁘고 고급스럽다고 찬사를 보내고, 넥타이를 좀 볼 줄 아는 사람들은 브랜드를 얘기한다.


"역시 페라가모가 예뻐요 "


유감스럽게도 이 넥타이는 페라가모가 아니다. 내가 아니라고 할 때의 사람들의 반응이 사뭇 흥미롭다. 그럴 리 없다며 손사래를 친다. 정말 아니라고 하는데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실례를 무릅쓰고 다가와 넥타이를 뒤집어 브랜드를 확인한다. 그제야 정말 아닌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명품 감별 실력에 심각한 스크레치가 난 것처럼 고개를 갸우뚱하는 모습도 다들 비슷하다. "분명 페라가몬데.."


이런 일을 몇 차례 겪고 나니 굳이 부인하는 것도 귀찮아져서 아니라고 말하지 않고 그냥 조용히 지나친 적도 있다. 그럼 상대방은 페라가모로 알고 넘어간다. 나는 페라가모 넥타이를  신사로, 그는 명품을 알아보는 교양인으로, 모두에게 해피엔딩이다.


가끔씩 내가 이 가짜 페라가모 넥타이 같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들은 진짜 내 모습보다 나를 더 좋게 봐주는 경우가 많아서다. 부인해도 한사코 그럴 때가 있다. 고마운 일이다. 가끔씩 그런 오해를 굳이 부정하지 않고 슬쩍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 민망하다. 내가 명품이 아닌 걸 내가 아는데..


주변에 명품 같은 사람들이 많아서 좋다. 어떤 이는 마음이 따뜻해서, 신앙심이 깊어서, 배려할 줄 알아서, 얼굴이 예뻐서.. 저마다 이유는 달라도 하나하나 뜯어보면 모두 명품이다. 진짜 명품이 아니라도 상관없다. 서로 추켜세우며 살아가는 것도 나쁘진 않은 것 같다.

 "당신은 명품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봄이 오려나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