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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랑바쌈 Jul 19. 2021

나일강을 건너다

죽음의 땅으로 가는 길

이집트 출장을 다녀왔다. 팬데믹으로 연기된 출장을 더 미루기가 어려웠다. 목적지는 룩소르. 이집트의 대표적인 유적지다. 고대 카르낙 신전과 소년왕 투탕카멘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내가 담당하는 프로젝트 현장이기도 하다. 수도 카이로에서 두어 시간 남쪽으로 내려가 룩소르  공항에 도착했다. 여기저기서 미국식 영어와 러시아어가 뒤섞여 들려왔다.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백신접종률이 높은 두 나라 사람들이 팬데믹 비수기를 틈타 여행에 나선 것이다. 섭씨 45도를 넘나드는 폭염에도 꿋꿋이 마스크를 쓰는 사람은 우리 일행밖에 없는 듯했다. 백신을 맞았지만 이중삼중 방어막을 쳐야만 했다. 괜한 구설수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선. 호텔에 짐을 풀자마자 사업현장으로 이동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오후 5시가 넘었지만 이때부터가 해를 피해 본격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이다. 나일강이 눈앞에 펼쳐져있다. 해가 많이 떨어졌지만 복사열에 십 분을 가만히 서있기가 어렵다. 마중 나온 현지 직원이 강을 건너야 한다며 선착장으로 안내했다.

룩소르 나일강에서 다이빙하는 현지 아이들

아이들이 거침없이 깊은 강물 속으로 뛰어든다. 나도 따라 들어가고 싶은 마음을 꾸욱  눌러 담고 배에 올랐다. 엔진이 없는 돛단배였다. 말 그대로 바람에 의지해 돛의 방향을 조절해 나아가는 방식이었다.  크기론 선장보단 사공이 맞겠다 싶은데 노를 젓지는 않는다. 사공은 배 이편저편을 넘나들며 바람의 방향에 따라 돛을 이리저리 돌려댄다. 치마처럼 아래가 뚫린 흰색 원피스를 입고 있어 움직임이 불편해 보인다.

햇볕으로부터 몸을 완전히 가리면서도 통풍이 잘 되는 이집트 남자의 활동복이다.


어느 순간 배가 멈췄다. 바람이 멈춘 것이다. 강 한가운데서 오도가도 못하고 바람을 기다렸다. 십여분이 흘렀다. 갑자기 사공이 북을 꺼내더니 노래를 하기 시작한다. 구성지게 한가락을 뽑더니 후렴구를 반복하며 눈짓을 한다. 따라 부르라는 얘기다. 눈치를 살피며 모기처럼 앵앵거리던 노래가 점점 커지더니 사방으로 쩌렁쩌렁 울려 퍼진다. 바람이 분다. 신기하게도. 사공은 노래를 듣고 바람이 온 것이라 했다.

강 저편으로 해가 뉘엿뉘엿 저문다. 난생처음 보는 펠리컨 무리가 오와 열을 맞춰 수면을 아슬아슬 스치며 물수제비를 뜬다. 코로나 이전 강에 유람선이 빼곡할 때는 보기 어려운 광경이라고 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나일강의 동쪽을 생명의 땅, 서쪽을 죽음의 땅이라고 여겼. 그래서 이집트 왕 파라오들의 무덤인 피라미드도 나일강 건너 서편에 있다. 동쪽엔 궁전과 신전이 있다. 파라오는 신과 교류하는 유일한 인간으로 우상화되었다.


나일강 위에 떠 있는 느낌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벅차오름'이다. 어떻게 연중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사막 같은 곳에 이렇게 넓고 깊고 맑은 물줄기가 이리도 기다랗게 뻗어내려 올 수 있었을까. 게다가 주기적으로 범람해서 주변 땅을 옥토로 만들 정도로 놀라운 생명력을 갖고 있다. 나일강은 우간다 케냐 탄자니아에 둘러싸인 빅토리아 호수와 에티오피아 티나호에서 발원한 두 개의 큰 물줄기가 만나 흘러온다. 그나마 이집트 쪽 상류에 아스완댐이 건설되면서 유량이 많이 줄어든 것이라 한다. 지금의 기세로 보아 과거의 웅장한 위용이 짐작이 간다.

나일강 서편으로 해가 넘어가고 있다

배가 꽤 낮아 수면이 가깝다. 손을 아래로 뻗어 강물을 조금 건져 올렸다. 막 녹은 얼음물처럼 시원했다. 좀 욕심내어 머리라도 담그고 싶었는데 주변에서 뜯어말렸다. 그렇게 뜨거운 햇볕을 온종일 받고도 이런 차가움을 유지하고 있다니 놀라웠다. 물속 깊은 곳에 한기를 뿜어내는 또 다른 태양이 있는 건 아닐까 싶었다.


호텔이 있는 동편을 떠난 지 40여분이 흘러서야 서쪽에 이르렀다. 뭍이 가까워지자  물속의 거대한 수초 줄기에서 뻗어 나온 잎들이 팔랑거리며 뱃길을 인도한다. 배에서 내려 죽음의 땅에 발을 내딛는 순간, 왠지모를 엄숙함에 숙연해졌다.  흥미로운 것은 서쪽 왕가의 무덤들이 현재를 살아가는 이집트인들에게 막대한 관광수입을 안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죽음은 또 다른 생명으로 가는 길이다. 다만 그 과정이 고달프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나일의 돛단배처럼 둥둥 떠서 사뿐히 서편을 밟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은 욕심이겠지. 코로나가 종식되면(종식된 걸로 전 세계가 합의하면) 다시 한번 나일을 찾아 바람에 둥둥 떠다니는 기분을 느껴보고 싶다. 너무 늦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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