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엔 끝이 있다.
끝은 또 다른 새로운 시작으로 연결되기 마련인데, 그 시작이 더 좋은 것이거나 기다려온 것이 아니라면 끝을 가능한 늦추고 싶어 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대개 이런 연장의 시도는 불가능하거나 오래가지 못한다. 단꿈이 그런 것이다. 깨고 싶지 않지만 깰 수밖에 없다. 젊음이 또한 그런 것이다. 방부제를 바른 듯한 사오십대 연예인들의 외모도 실상은 열 받은 유리처럼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는 것이다. 배우 윤여정처럼 주름을 타고 부드럽게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는 경우는 드물다. 미성년자 딱지를 떼고 대학생 성인이 될 때, 군대에서 전역했을 때처럼 다음이 기다려지는 끝은 나이가 들수록 기대하기 어렵다. 좌절 마시라. 인생이란 게 참으로 오묘한지라 나이가 들어도 가슴 뛰는 시작이 찾아올 때가 있다. 경계하라. 불륜의 시작은 늘 파국으로 끝난다.
최근 나에게도 가슴 뛰는 시작이 찾아왔다. 9살 막내와의 아침 조깅이다. 태권도 학원이 운동은 안가르치고 놀이만 한다고 불평하던 원이는 큰 맘먹고 올초에 합기도로 갈아탔다. 초록띠에서 흰 띠가 되었으니 백의종군인 셈이다. 원이는 특전사 출신 합기도 관장님의 뒤를 이어 본격 무도인이 되기로 했다. 매일 아침 6시 반 기상하여 45분간 정해진 코스(권법 발차기 쌍절곤 단검 등)를 혼자 수련한다. 7시 15분이 되면 아빠를 깨워 조깅을 한다. 추운 겨울엔 계단 오르기를 하다가 봄이 되자 아빠의 제안으로 조깅을 시작했다. 원이가 정한 휴일(목, 주말) 외에는 어김없이 일어나 이 루틴을 지켰다. 가끔 야근으로 잠이 부족하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도 녀석의 단호한 콜링을 거부할 순 없었다. "아빠, 일어나!!!" 1분의 늦잠도 허락하지 않았다. 20여분의 짧은 조깅이지만 뛰고 오면 몸이 가벼웠고 건강해지는 느낌이 들어 좋았다. 조깅을 마치고 집에 들어올 때마다 녀석의 뒤통수를 향해 내뱉는다. "네가 효자다 효자야.." 녀석은 알아들을 리 없다.
사실 그보다 더 좋았던 것은, 나란히 함께 뛰면서 녀석의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보고 거친 숨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들이 콩나물처럼 잘 자라고 있다는 것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순간들이었다. 이만한 복이 또 어디 있을까.. 내 건강은 덤이다. 이따금씩 숨을 헐떡이며 어제 친구 준영이가 억지 부린 얘기를 고자질할 때는 어찌나 귀여운지 콱 깨물어주고 싶다. 언젠가 아내한테 원이와 조깅하는 기분을 이렇게 표현한 적이 있다. "김태희처럼 완벽히 예쁜 여자와 나란히 아침 조깅을 한다면 이런 느낌이겠구나 싶어" (다행히 별 탈 없이 넘어갔다) 원이의 무도 생활이 오래갔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랐다.
모든 것엔 끝이 있다. 원이의 아침운동도 그랬다.
여름 방학, 폭염의 아침 더위.. 조깅을 방해하는 것들이었다. 두어 번 늦잠으로 이침 운동을 놓쳐버린 원이는 다시 이전의 루틴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입장이 바뀌어 이제 내가 깨워도 꿈쩍하지 않았다. 십 분이라도 늦을 새면 울상이 되던 아이에게 이런 여유가 생긴 것 또한 성장이라 할 수 있겠지만 아빠는 못내 아쉽다. 하릴없이 혼자 나가서 같은 코스를 달리기 시작했다. 몹시 어색하고 외로웠다. '아.. 김태희랑 조깅하다가 혼자 뛰면 이런 기분이겠구나..' 얼마 못 가서 털레털레 되돌아왔다. This is the end of jogging.
"원아, 아침 운동 이제 안 할 거야?"
괜히 무안 줄까 봐 저어하며 슬쩍 물어본다. 아들은 잠시 고민하는 척하더니, 여름방학이 끝나면 다시 시작하겠다고 답했다. 지키기 어려운 약속이란 걸 알지만 위안이 되었다. 꼭 조깅이 아니라도 좋아. 조깅도 내가 원한 시작은 아니었듯, 너는 늘 예상치 못한 시작으로 아빠의 가슴을 뛰게 하니까. 어떤 시작이든 아빠는 함께 뛸 수 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