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의 적을 만들지 않는 것
행복과 불행을 가르는 결정적 조건
톨스토이 소설 <안나 까레리나>는 이렇게 시작한다. 행복한 가정들은 모든 면에서 비슷한 조건으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들은 불행한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 풀어 말하자면, 삶의 조건이 열 가지가 있다면 열 가지를 고만고만한 점수로 패스한 사람은 행복을 얻지만, 아홉 가지를 만점 받고도 한 가지가 과락이 나면 불행의 늪에 빠진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총점보다 과락 하나를 만들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 인간의 건강과 수명도 그러하다. 신체 모든 장기가 쌩쌩해도 하나가 망가지면 건강이 무너진다.
이걸 인간관계에 대입하면 더 잘 맞아떨어진다. 열의 아홉에게 인심을 얻어도 한 사람의 미움을 사면 관계의 불행에 빠진다. 적이 된 한 사람의 힘은 막강하다. 무서우리만큼 집요하다. 유력 대권주자를 집요하게 공격하는 여배우가 있다. 진실은 두 사람밖에 모르지만 그 정치인이 그녀를 적으로 두었다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누구의 말이 옳든 이 정치인의 입장에선 이 여인 하나가 백만 명의 열렬한 Fan보다 신경 쓰이는 존재일 것이다.
일개 아무개에 불과한 나도 때때로 그런 적을 만들고 또 누군가에게 적이 된 적도 있다. 대학시절 경제사상사 수업 때였다. 시간강사가 자신이 지정한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내라는 과제를 냈다. 강사 자신이 공저로 집필한 책이었다. 문제는 이 책을 직접 구매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친구나 도서관에서 빌려볼 수 없도록 구매내역을 증빙하게끔 했다. 책은 사서 보는 게 옳다는 강사의 주장이 틀렸다고 할 순 없지만 적어도 자기 수업 과제에 적용할 것은 아니었다. 정의 회로가 발동했다. 당장 익게에서 이 문제를 지적하는 글을 썼다. 백 명이 넘는 수강생 개개인에게 책 구매를 강요하는 건 수업을 영리 목적으로 이용하는 거 아닌가.. 내 입장에선 약간의 브레이크를 건 것이었지만, 강사에겐 꽤나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해명글이 올라왔다. 따지고 보면 가난한 시간강사들이 짬짬이 땀 흘려 쓴 책이고 수강생들 아니면 딱히 사줄 독자층도 없었다. 그렇게 수업 과제로 끼워 백 권을 팔아도 저자 각각에 돌아가는 인세는 고작 돈 십만 원 수준. 그런 영세한 보따리장수에게 난 왜 그리 야박했을까.. 후회가 된다.
음식 배달 주문을 할 때마다, 리뷰와 별점이 눈에 들어온다. 온갖 저주를 퍼부으며 별 한 개로 보복하는 이들이 어디에나 있다. 뭐가 그리 맘에 안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죽기 살기로 평점을 끌어내리려는 시도에 살기가 느껴져 애처롭기까지 하다. 식당 주인에게 이 한 명의 적은 참으로 위협적이다. 불행의 근원이다. 별점 테러로 우울증에 빠진 식당 주인이 자살한 사건을 뉴스에서 본 적이 있다.
적을 만들지 말아야지. 적이 되진 말아야지. 늘 다짐하면서도 그게 참 쉽지가 않다. 모든 인간은 저마다의 미성숙의 터널을 지나니까. 자신에게 돋친 가시를 알지 못한 채 주변을 막 찌르고 다닌다. 거침없이. 누군가의 적이 되고 적을 만든다. 그러다 터널을 빠져나올 때쯤 깨닫고 후회하고 반성한다. 성찰 없이 끝나는 인생도 부지기수다. 두려운 마음으로 집을 나선다. 내 몸에 아직 남은 가시가 없는지 살피며.. 또는 누군가의 가시에 찔리지 않기를 바라며.. 조심조심 주위를 살피며 오늘을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