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카페의 커피잔에 손잡이가 없는 이유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by 이베리코

부모님으로부터 알콜 분해능력을 제로로 물려받은 나는, 술을 거의 하지 못한다. 어쩌면 안 한다는 말이 더 적합하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사회 생활을 하다 보면 가끔 피할 수 없는 술자리가 만들어지곤 한다. 술 한잔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지고 속을 게워내야 끝나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알고도 음주를 한다는 건 '알쓰(알콜 쓰레기)'들에게는 고문과 다름없다. 다음날 두통을 느끼게 될 때면 술 없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도 자주 든다.


스페인에 거주하면서 맛있고 가성비 좋은 와인을 많이 체험해보지 못하는 것이 늘 아쉽다. 주위 사람들이 맛있는 음식과 와인을 페어링을 하면서 먹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이런 내 마음에 대들기라도 하는 듯, 매일 맛있는 유럽 커피를 마음껏 섭취하고 있다. 카페인이 나쁘다는 정보는 이미 수없이 접한다. 그러나 어떻게 평범한 사람의 인생에서 길티플레져(Guilty Pleasure)를 빼놓고 살 수 있을까.


여행지를 가면 꼭 그 도시의 스페셜티 커피를 취급하는 카페에 가곤 한다. 올해 초 와이프가 잠시 한국에 들어간 사이, 홀로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여행했다. 1월의 부다페스트는 스페인 보다 훨씬 추웠다. 그래서 추운 몸을 녹이기 위해 시내 카페를 자주 들락거렸다. 그중에서도 카페 분위기도 좋고 가장 커피가 맛있었던 곳은 부다페스트 에스프레소바인 Madal Cafe였다.


몸을 녹이기 위해 따뜻한 라테를 시켰다. 커피를 주문하고 기다리다가 카페 2층에 혼자 앉기 적합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커피를 마시려고 하는데 컵에 손잡이가 없어서 잔을 잡기가 너무 뜨거웠다. 추위에 떨어 얼굴도 얼어있는 상황에서 진한 커피 향과 고소한 우유 향을 내뿜는 라테를 단숨에 들이키고 싶은 충동을 참을 수 없었다. 그러나 불덩이 같은 커피 잔을 몇 분 간 도저히 만질 수가 없었다. 혼자 카페에 간터라 커피 잔이 식을 때까지 딱히 할 것이 없었다. 그래서 The Midnight Library책을 보면서 약간의 시간을 때웠다. 폼 잡으려고 일부러 영문본을 가져왔는데, 커피잔이 식기를 기다리면서 반 강제적으로 약 20페이지나 읽었다.

KakaoTalk_Photo_2024-08-18-오전 8-34-26.jpeg 폼 잡으려고 가져온 원서를 뜨거운 커피잔 덕분에 집중해서 읽었다.

어느덧 이제 잔 끄트머리를 만질 수 있을 정도로 잔이 식었고, 풍부한 향의 라테를 즐겼다. 커피에 대한 전문가는 아니지만, 유럽 카페의 일반적인 커피는 보통 산미가 있어 구수한 커피를 좋아하는 한국인의 입맛에는 그렇게 맞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유럽의 우유는 우리나라 우유보다 공정을 덜 거치는지 맛이 아주 고소하다. 산미가 있는 커피와 고소한 우유가 만나면 정말 맛있는 라떼로 재탄생한다.


커피를 다 마시고 종업원에게 잔을 반납하면서, 왜 보통의 유럽 카페에서 손잡이가 없는 커피잔을 사용하는지 물어보았다. 소비자가 원하는 뜨거운 커피를 바로 마실 수 없고 자칫하다 손을 데이면 어떡하냐고 덧붙였다. 그러니 바리스타로 보이는 직원이 유럽에서 자주 사용되는 커피잔을 보여주었다. 유럽 커피 문화에서 사용하는 이 도자기 잔은 '데미타스' 잔이다. 주로 에스프레소 같은 강한 커피를 제공하는 데 사용된다고 한다. 이 잔은 커피가 빠르게 식지 않도록 도와주며, 커피를 천천히 즐길 수 있다고 설명해 주었다. 손잡이 없는 컵을 조심스레 만지면서 손의 감각으로 온도를 느끼게 해 주고, 커피를 한 모금씩 살짝살짝 마시게 하여 커피의 향과 맛을 더 잘 음미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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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경험한 유럽의 데미타스 잔에 담긴 커피 사진. 살짝 넘치면 너무 뜨겁다.

스페인 마드리드에 거주하면서, 아내와 주말마다 카페 탐방을 하는 것이 몇 안 되는 취미 중 하나이다. 마드리드의 많은 카페에서도 손잡이가 없는 커피잔을 사용한다. 부다페스트 여행 이후 커피잔에 관심이 생겨 단골로 가는 카페 직원에게 '유럽은 왜 뜨거운 커피를 손잡이가 없는 잔에 주는지' 질문을 했다. 그 직원은 커피를 마신다는 것은 단순한 음료를 즐기는 행위가 아닌, 사색과 대화를 위한 하나의 문화로 여기기 때문이라고 한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느긋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유럽의 커피 문화이고, 손잡이 없는 작은 도자기 잔을 사용하여 의도적으로 천천히, 느릿느릿하게 커피를 즐기게 하는 것이다.


나와 아내는 매번 '왜 이렇게 커피 잔이 뜨거워!' 하면서 약간 화를 내기도 했다. 빨리빨리, 다이나믹의 민족인 한국인을 기다리게 한다니, 이건 분노를 유발하는 행위이다. 그러나 우리는 화를 내다가도 어느덧 커피 잔이 식을 때까지 이런저런 대화를 한다. 로마에서 로마 법을 따라야 하니, 알게 모르게 우리 부부도 유럽의 커피 문화를 이해하고 스며들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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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문화라 해도 펄펄 끓는 아메리카노를 손잡이 없는 잔에 주는건 적응이 안된다.

한국에서는 커피 맛을 빨리 느끼고 싶어서 주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 먹곤 했다. 글을 쓰거나 빡센 일을 하고 나서는 카페인 생각이 간절한데, 시원한 커피를 빨대로 쪽 빨아들인 후에 카페인이 온몸에 퍼지는 느낌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정도로 행복하다. 그러나 유럽의 손잡이 없는 커피잔 덕분에 느낄 수 있는 느긋한 커피 문화도 바쁜 일상에서 약간의 휴가를 즐기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아직도 펄펄 끓는 아메리카노를 손잡이 없는 잔에 받으면 당황스럽지만, 어느새 그 속에서 잠시나마 느긋한 여유를 즐기게 된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이게 바로 커피 한 잔의 묘미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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