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장모님 생신으로 가족들이 모여 식사를 했습니다. 케이크에 왜 이리 초가 많냐며 '후우' 하고 촛불을 끄십니다. 작은 초들은 뺄걸 그랬습니다. 귀엽습니다.
제가 느낀 많은 촛불들은 힘들었던 장모님의 80여 년 세월의 흔적이며 훈장이었습니다.
식사를 하며 장모님께 애들 어릴 적 얘기를 들으니 웃펐습니다.
큰 딸인 아내는 예쁜 치마를 입고 싶은데 항상 바지에 어두운 색의 상의를 입었습니다. 남동생인 처남에게 물려주기 위해서였죠. 그리고 몇 년 후 그 옷은 정확히 처남의 옷이 되었습니다.
생선은 항상 값싼 임연수어나 고등어였습니다. 몸통은 아빠와 애들에게 가능한 많이 주기 위해 잘 발라 놓고 머리와 꼬리는 장모님 몫이었죠.
어려웠던 시절에 장모님도, 아내와 처남도 모두 가슴이 아팠다고 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지요. 제 동생들은 항상 형이 입던 옷만 입었다고, 특히 구멍 난 곳을 엄마가 꼼꼼히 기워준 옷은 늘 창피했다고 말합니다.
장모님께 "고생 많으셨어요." 하고 말씀드리니 "우리 엄마들은 얼마나 힘들었겠어. 그래서 엄마에게 미안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말이 더 짠했습니다.
어려운 시절을 겪으며 마음에는 감추고 싶은 상처들이 무수히 생깁니다.
상처가 채 아물기 전에 다른 상처가 생기기도 합니다. 그 상처가 보일까 봐 마음에 꼭꼭 숨겨 놓기도 하지만 흉터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흉터는 상처가 나았다는 증거입니다. 흉터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삶의 상처와 흉터가 반복되는 동안 아물 수 있도록 노력하고, 견디고, 성장하는 법을 배웠으니까요.
최소한 제가 아는 아내, 처남, 동생들은 어려운 시절을 이겨내면서 생긴 흉터들을 사랑합니다. 저도 물론 제 흉터들을 사랑합니다.
상처가 아프고 힘들었어도 지금까지 이겨냈습니다. 흉터는 창피하기보다 열심히 살아온 지난날의 노력과 용기의 증명이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수많은 상처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수 십 년의 경험이 말해줍니다. 그러나 지난 수 십 년의 용기와 믿음은 그 상처를 이겨내면 삶의 소중한 흉터로 남는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상처를 덧나게 하는 것도 '나'이고, 상처를 아물게 하는 것도 '나'입니다.
상처는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성장하는 삶이 될 수도 있고, 머무는 삶이 될 수도 있습니다.
즐겁고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마음의 상처를 잘 극복하고 살면서 생긴 흉터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 흉터가 앞으로 만나게 될 많은 상처의 칼날을 막아내는 수호천사의 방패가 되어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좋은 날! 행복한 날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