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흰칼라새 Sep 27. 2024

미안하고 고마운 친구에게

마음의 편지


친구가 그립고 보고 싶은 날이다.


누구에게나 돌이키고 싶지 않은 과거가 있고 아픔이 있다.


그 아픈 마음을 치유하고 다독거리는 일은 죽을 만큼 외롭고 힘들다.


어쩌면 아픈 과거를 잊으라는 것만큼 가혹한 말은 없을지도 모른다.


아팠던 기억을 어찌 잊을 것이며 이는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아픔의 상처는 치유하고 흉터로 품어야 한다. 감당하기 벅찼던 슬픔도 그리움으로 남기고 미래를 향해 가야 하는 게 우리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나는 2001년 밀레니엄이 시작되는 해에 그녀를 친구에게 소개해 주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을 다니던 그 친구는 몇 번의 사랑을 경험했지만 실패했었고 그녀는 첫사랑이었다.


첫 만남 이후 둘은 폭풍같이 사랑했다.


그렇게 두 해가 가고 결혼을 승낙받기 위해 둘은 양가에 인사를 드리러 갔지만 결국 승낙을 받지 못했다.


보수적인 양쪽 부모의 입장에서 서로 귀한 자식들의 결혼을 연애가 아닌 가문과 가문의 정략결혼을 원했기에 둘의 교제를 허락하지 않았다.


설득하고 이해시키려 했으나 결국 둘은 부모님들의 벽을 넘지 못하고 헤어졌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둘의 그리움은 더욱 깊어졌고 다시 사랑하게 되었다.


그렇게 다시 그들은 연인으로 서로를 위해주고 사랑하는 깊고 긴 20여 년간의 연애를 했다.


착한 두 사람은 결혼을 반대한 부모님을 이기기보다 모두 돌아가시면 그때 부부의 연을 맺기로 했다.


하지만 평범하고 행복한 시간에 불현듯 찾아온 소식은 둘에게는 너무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늘 복통이 있었던 그녀는 어느 날 직장암 4기 진단을 받았다. 더 큰 병원에서 진단받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항암치료가 시작되었다.


그 해 봄에 두 사람은 아직 희망을 갖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녀가 스스로 희망을 보여 주었다. 늘 강했던 그녀는 평소처럼 씩씩했고 농담도 잘했다. 그래서 앉아 이야기를 하다 보면 암 병동인지도 모를 정도였다.


그러나 얼마 뒤 검사결과는 참담했다. 온몸에 암이 전이되어 있었다.


6개월이 남았다고 했다.


친구는 그녀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고 생각했다.


성실했던 그는 20넘게 다니던 대기업 임원을 포기하고 처음으로 일 년 휴직을 신청했다. 그리고 함께 가서 살자고 자주 이야기 하곤 했던 제주도의 집을 알아보고자 했다. 그렇게 제주에서 함께 살며 좋은 공기 마시고 치료받으면 어쩌면 더욱 호전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그러나 항암치료에도 불구하고 배를 쥐어짜는 고통이 하루에도 수 차례 지속되면서 그녀는 서서히 지쳐갔다. 진통제로도 잡히지 않아 아파할 때면 둘은 서로를 꼭 안고 울며 고통을 견뎠다.


친구는 그녀와 만나 지내온 지난 20년을 지금처럼 아껴주고 사랑했더라면 그 시간이 행복하고 후회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 진작에 이런 마음으로 그녀를 대하지 못했을까'라는 자책도 했다. 아직은 사랑할 시간이 더 필요한데 그냥 보낼 수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천공이 발생해 급히 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남은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마지막 선고가 내려졌다. 항암치료를 하는 것이 오히려 몸에 부담을 준다고 했다. 참으려 해도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남은 사람들이야 어떻게 든 살아가겠지만 너무 젊은 나이에 그녀가 세상을 떠나면 너무 불쌍할 것 같았다.


떠나기 전까지 그녀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고 그녀를 지탱할 수 있는 것은 네 개의 주사약뿐이었다. 점점 수척해지고 아파하는 그녀에게 어떻게 해도 위로를 할 수 없었다. 그녀가 아프지 않고 단 일 년 만이라도 함께 있을 수 있기를 기도하고 애원했다.


그녀는 정신이 혼미 해져가는 것을 반복하던 어느 날 친구에게 펜과 편지지를 부탁했다. 정신이 조금이라도 있을 때 부모님께 편지를 쓰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애써 정성을 들여 쓰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러나 끝까지 써내려 간 편지에 친구는 마음이 아팠다.


사랑하는 엄마, 아빠에게!

엄마, 아빠! 먼저 가서 미안해.

지금까지 엄마, 아빠의 딸로 살아서 너무 행복했어.

절대 슬퍼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늘 함께 오래오래 같이 살고 싶었는데 정말 너무 미안해.

두 분 지금처럼 아프지 말고, 너무 빨리 오려고 하지 말고 행복하게 지내고 아주 천천히 와.

미안하고 고마웠어.

정말 무서운데 그래도 날 잊지 말아 줬으면 좋겠어.

너무너무 사랑해.


힘겹게 편지를 써 내려간 그녀는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따뜻하고 행복한 일인지를 알려준 사람이 친구라고 했다.


“오빠에게 편지를 써야 하는데 이젠 쓸 힘도 없네. 미안하고 고마워.”


혹시 자기가 먼저 떠나고 좋은 사람 못 만나 갈 때 없으면 아주 오래 있다가 자기 옆으로 오라고 했다. 그리곤 그녀는 잠이 들었다.


며칠 뒤 그녀는 극심한 호흡곤란이 왔고 의사는 임종의 징후라고 가족들을 부르라고 했다. 친구는 좀 더 힘내라고 조금만 참자고 눈 떠보자고 메인 가슴을 부여잡고 위로하고 있었으나 좀처럼 그녀는 눈을 뜨지 못했다. 아직은 따뜻한 그녀의 손을 친구는 놓을 수가 없었다.


파킨슨 병이 있는 아버지와 무릎이 안 좋으셔서 거동이 불편한 어머님을 모시고 막내 동생 가족이 오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숨을 거두었다. 너무 슬퍼 모든 세상이 멈춘 듯했다.


그때 간호사는 말했다.

“곧 부모님들이 오시는데 인공호흡으로 조금이라도 살 수 있게 할까요?”

친구는 그녀의 부모님에게 마지막 숨이 붙어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부탁하여 인공호흡으로 겨우 숨을 쉴 수 있게 했을 때 그녀의 부모님과 가족이 들어왔다.


그녀는 애끓는 가족들의 작별을 알아들었는지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그렇게 봄의 마지막 날에 먼 길을 떠났다.  친구가 그녀를 만나고 사랑한 지 20년 6개월 만의 영원한 이별이었다.


지난 3개월 암과 싸우며 친구는 어느새 그녀의 가족이 되어 있었고 더욱 사랑했다. 3일 장례식을 치르고 화장터로 가기 전 본 그녀의 창백한 마지막 모습을 보며 모든 가족이 오열했다.


화장을 하고 그녀의 가족은 한적한 절에 그녀를 모셨다. 친구는 49일이 되는 날 이제는 좋은 곳에서 더 이상 아파하지 말고 가장 예쁘고 행복했던 모습으로 편안해지길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그렇게 그녀를 보내고 친구는 너무 외로워했다.


여느 때처럼 일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가면 늘 그곳에 있을 것 같았던 그녀는 이젠 그곳에 없었다.


죄책감과 그리움 속을 허우적거리면서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친구의 슬픔과 그리움은 평생 진행 중이라고 했다. 그녀의 이야기에 난 친구와 1년간 함께하며 많은 눈물을 흘렸다.


나는 후회했다. 20여 년 전에 친구에게 그녀를 소개해 준 것을 너무 후회했다.


“괜찮아. 큰 아픔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이해할 수 없잖아. 지난 1년 간 함께 있어줘서 고마워.”


그렇게 친구는 딱 1년 만에 회사로 복귀하고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또 1년이 지났다.


시간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우리의 일상이다. 보잘것없는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간은 마음의 틈을 만들어준다. 이 틈이 사랑하는 친구의 마음에 생겨나 일상의 싹을 틔우고 꽃을 맺어가길 소망해 본다.


착한 나의 친구!

미안하고 고마운 친구!

보고 싶은 친구!


영원히 마르지 않는 눈물이 없듯이, 아파하고 힘들어하지 말고 평범한 일상의 틈에 새겨진 희망을 품고 있길 바랄게.


이 글을 본다면 훗날 단단해진 마음과 평범한 일상에서 만날 날을 기다릴게.


잘 지내.

미안하고 고마운 나의 친구!


작가의 이전글 지금 해야 할 소중한 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