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림의 땅, 은둔의 자유

코타 키나발루 가야섬

by 호림

“내가 숲 속으로 들어간 이유는 깨어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였다. 삶의 본질적인 사실만을 직면하고 그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 있을지 알아보고, 내가 숨을 거둘 때 깨어 있는 삶을 살지 않았다고 후회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삶이 아닌 삶은 살고 싶지 않았다. 삶은 정말로 소중하다. 그리고 가능한 한 체념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었다.” (윌리엄 데이비드 소로 <월든> 中)


스마트폰이 터지지 않았다.

잘됐다. 스마트폰에서 해방되고 싶었다. ‘와이파이가 잘 터지지 않는 건 불편해요’라는 투숙 후기가 의외로 마음속에 콕 박혔다. SNS며, 유튜브며 우리가 겨우 손바닥 크기만 한 스마트폰에 쏟는 시간이 얼마나 많은가. 심지어 화장실 갈 때도 들고 다니니! ‘스마트폰을 제대로 쓸 수 없는 곳에 간다면 금단증상이 생기는 거 아닐까, 아니면 의외로 참을 만할까’ 그렇게 향한 곳이 말레이시아 코타 키나발루에서 배로 30분 거리의 가야 섬이다. 그곳에서 나는 은둔할 자유를 얻었다.


한겨울에 비행기에 몸을 실었는데, 코타 키나발루 공항 밖을 나서니 무더운 기운이 몸의 곳곳으로 스민다. 제셀톤 부두까지 택시에 몸을 실었다. 그곳에서 다시 분가라야 리조트로 가는 보트를 타고 30여 분 달려서 드디어 당도했다. 초록빛이 감도는 옥빛의 바다에 떠 있는 제티(Jetty : 둑, 부두)로 옮겨가기 위해선 용기가 필요했다. ‘바람의 땅’이라는 이름 그대로 몬순 시즌의 성난 바다는 쉽사리 리조트로 입성을 시켜주지 않을 태세였다. 점점 더 파도를 세차게 치밀었다. 보트가 파도를 타고 제티에 가장 가까워지는 순간, 까무잡잡한 직원이 손을 내민다. 힘껏 손을 내밀어 배가 파도에 밀려나기 전 아슬아슬하게 탈출을 감행했다. 발이 안전하게 땅에 닿는 순간, 모험 아닌 모험의 순간에 세포가 짜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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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섬은 정글로 싸인 곳이다. 청정 자연을 자랑하는 이곳의 원시림은 세계 3대 선셋으로 잘 알려진 코타 키나발루의 잘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속살이다. 코모도 도마뱀과 야생 멧돼지, 야생 원숭이가 산 깊은 곳이 아니라 리조트 안팎에 공존하고 있다. 사진이나 다큐멘터리에서 보던 희귀동물들이 마냥 신기했다.


사람은 잘 없었고, 희귀동물들은 잘 볼 수 있는 희한한 곳. 백색소음 대신 새가 지저귀고 파도소리의 높낮은 소음이 들리고, 싱그러운 녹음이 우거진 이곳에서 얻는 은둔의 기쁨은 부인하지 못하겠다. 리조트가 있는 가야 섬은 그 이름때문인지 삼국시대 가야를 떠올리게 하지만 바자우 족의 언어로 ‘크다’라는 뜻을 가진 섬이다. 가야 섬은 사피 섬, 마무틱 섬, 술록 섬 등 5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툰구 압둘 라만 해양공원 섬들 중 가장 큰 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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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취색 바다가 보이는 숙소에 묵으며, 하루 종일 하는 일이라곤 아침에 짹짹 지저귀는 새 소리를 듣고 밤에는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파도의 소리를 듣는 일이었다. 개인풀의 잔잔한 물소리를 들으며 널찍한 선베드에 누워 바다 전망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전날까지만 해도 업무로 짓눌려 있던 게 믿어지지 않는다. 자연 그대로의 야생화의 짙은 분홍빛깔, 넘치는 생명력을 주체하지 못하고 끝을 모르고 뻗은 활엽수의 짙은 녹색과 어우러진 맑은 바다의 모습은 탄성을 자아냈다. 심신의 피로가 넘실대는 파도소리에 죄 쓸려간다. 책 한 권 들고 야자수 숲 그물침대(해먹) 위에 누워 취하는 짧은 휴식은 ‘바로 이곳이야’라고 내 몸에 항변하며 일말의 긴장감도 내려놓게 만든다. 원시림의 땅에서, 꿈만 같은 시간은 빨리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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