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보르네오 섬
느릿느릿, 육중한 몸을 겨우 가누듯이 움직이는 도마뱀을 보고 덜컥 겁이 난다. 말레이시아에서 본 '말레이왕도마뱀(Water Monitor)'을 봤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물왕도마뱀'이라고도 한다. 몸 길이가 최대 3미터에 달하는 악어, 아니 도마뱀이다. 몸집만 봐도 '왕'이라는 이름이 붙을 만하다.
말레이시아 가야 섬은 야생 멧돼지, 거대한 왕도마뱀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바다에 면해있지만, 해발 4,095미터인 키나발루 산과 연결되어 있어 희귀 동식물이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로 발을 들인 것이다. 키나발루는 카다잔(Kadazan)족의 언어로 ‘영혼이 머무는 곳’이라는 뜻으로 ‘죽은 자의 안식처’로 부를 만큼 신성하게 여기는 곳이다. 말레이왕도마뱀은 현존하는 마지막 드래곤이라는 코모도 드래곤을 연상시킨다. 그도 그럴 것이 코모도 드래곤 다음으로 큰 몸집을 자랑하는 녀석이다. 꼬리를 스렁스렁 끌며 다니는 모습에 가까스로 놀란 마음을 추스른다. 강한 비늘로 싸인 꼬리를 내리깔고 돌아다니고 모습을 보며, 왕도마뱀을 만날 수 있단 걸 알았으면서도 발길이 주춤거렸다. 연못에도 물길을 크게 가르며 다녔고, 수풀도 왕왕 다녔다. 이름에 걸맞게 물을 매우 좋아한다.
현존하는 마지막 공룡
코모도 드래곤과 비슷해서 한마디로 '살아있는 공룡'을 만난 것 같았다. 그렇다고 이곳이 쥐라기공원이란 건 아니지만, '공룡'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우리의 유년기는 요동친다. 요즘 우리 아이가 즐겨 보는 만화영화도 '티티티 티라노사우르스'라며 공룡을 부르짖는다. 코모도 드래곤은 이미 화석이 되고도 남을 법한데, 유일하게 선사시대 이전의 모습으로 살아 있는 공룡으로 '멸종위기종'에 속한다. 몸 길이는 보통 2~3미터에 달하며 적도 부근 인도네시아 코모도 섬 부근에서만 서식하고 있다. 암컷 혼자서 임신과 출산이 가능하기 때문에 생존에는 좀 더 유리했을 것이다. 고백하건대, 코모도 드래곤에 대해 늘어놓는 있는 이유는 말레이시아에서 본 말레이왕도마뱀을 코모도 드래곤으로 착각했던 데서 기인한다. 그러니, 여행은 또 다른 여행을 유도하기도 한다. 말레이왕도마뱀을 코모도 드래곤으로 착각한 걸 알고 나니, 코모도 드래곤을 보고 싶단 욕심이 또 다른 여행 채비를 재촉한다. 코모도 드래곤이 살고 있는 유일한 섬, 코모도 섬에 가고 싶어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