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는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옷장문을 열면서 '오늘은 어떤 옷을 입을까?' 하는 설렘이 있던 젊은 시절은 지나가고
'입을 옷이 없네'하는 나이 든 탄식이 늘어났다.
옷이 문제가 아니고 내 몸이 문제였지만, 인정하기 싫었던 모양이다.
못 보던 옷들이 이렇게나 많았구나.
언젠가는 입어야겠지, 이럴 때 입을 옷도 필요해. 매번 같은 옷을 입어선 안되지, 이 재킷엔 붉은색 니트를 입어줘야지.... 이유는 끝도 없이 이어지고, 옷들에게서 미련이 낙엽처럼 뚝뚝 떨어진다.
청바지를 유난히 즐겨 입었던 탓에 청바지가 한가득이다. 계절별로 얇거나 기모가 있거나, 엷은 청색이나 진청, 물 빠진 청, 인디고, 네이비, 같은 청색이지만 다양하고 거기에 워싱에 따라서도 다르다. 일자로 빠진 스트레이트 바지, 밑단이 넓어지는 부츠컷바지, 힙한 엉덩이 바지인 보이프렌드 핏, 몇 년 전부터 유행 중인 통바지인 와이드핏 등등 형태도 각이각색이다.
몸무게가 늘어난 탓으로 이번 청바지 정리는 비교적 쉽게 정리가 되었다. 힘주어 입어야 하는 경우, 형태는 같은데 색상만 다른 것, 비슷한 형태인 것들은 하나만 남기는 것으로.
외투나 다른 옷들은 일 년 동안 한번 이상 입은 옷만 남기고 정리함으로 보냈다. 한 번도 입어보지 못한 옷들도 더러 있었다. 도대체 왜 산거냐고.... 속옷과 양말, 수건도 오래된 것들은 함께 정리를 했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있다 보니 양말도 계절별로 색상별, 형태별로 많기도 하다. 긴 양말, 발목양말, 덧신양말, 수면양말, 스포츠양말, 러닝용 양말... 사람이 사는데 이렇게 다양한 물건이 다양하구나!!!
옷을 정리하니 잘 사용하지 않는 색조화장품도 눈에 걸린다. 자주 쓰지 않다 보니 유통기한은 다가오는데, 아직 용량이 많이 남아있는 것들. 점점 쓸모가 없어지는 것들 역시 쓰레기통으로 직진한다.
정리된 옷들을 어디로 보내야 할지 어떻게 버려야 할지를 고민하다가
장애인단체에게 기증하는 곳을 찾아냈는데, 옷을 기증할 때 몇 벌이며 어떤 옷인지 상세한 정보를 필요로 했다. 이미 보낼 옷과 남길 옷을 분리하는데 한바탕 기운을 다 뺀 상태라, 기증을 위해 정리를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로 느껴졌다. 결국 무게를 재어서 한 번에 가져가는 업체에게 의뢰를 하게 되었다.
평소 한두 벌씩 정리하는 거라면 그런 기증도 가능하겠지만, 큰 정리를 하는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업체를 이용하게 되는 것 같다.
이렇게 많은 옷들은 다 어디로 가는 걸까. 대부분의 옷들이 합성섬유가 많아 재활용도 쉽지 않고 동남아시아나 인도, 아프리카 등으로 버려진다고 한다. 작년 한겨레 21 박준용 기자가 쓴 '버려진 헌 옷에 대해 탐사보도한 흥미로운 기사를 읽었다.
https://h21.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57984.html
대부분 묵은 옷을 버리는 것이었지만, 충동구매한 옷들도 꽤 있었다. 물건을 버릴 때마다 죄책감 비슷한 감정을 겪는다. 이런 감정에서 벗어나고 싶어 불필요한 구매를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실천 중이지만 쉽지는 않다. 구매하려고 장바구니에 넣었다가도 꼭 필요한가 질문을 하게 되면... 어느새 장바구니 속 물건은 삭제된다. 처음엔 불편한듯해도 익숙해지면 필요한 물건이 아닐 수도 있었구나를 깨닫게 된다.
한눈에 어떤 옷이 있는지 바로 알 수 있는 옷장을 보며, 비운다는 게 만족이 되는 아이러니.
만약을 대비해서 물건을 사던 습관을 조금씩 고쳐가 본다. 쿠팡아이디 없이도 지금껏 잘 살았는데, 이 정도쯤은 잘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