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 6막
2015년 8월 26일, 헬로우 두브로브니크 Dubrovnik
돌산인 디나르 알프스 중턱을 따라 아드리아 해안으로 길게 뻗은 도로는 아찔한 언덕을 지나 작고 아름다운 해변 마을을 한나절을 달리고 나서야 드디어 두브로브니크의 거대한 현수교가 보인다. 택시가 언덕을 위로 가로지으며 산 쪽으로 올라갔다가 해안 가까이로 내려가자 성곽도시인 올드타운이 모습을 드러냈다.
숙소는 성곽마을의 일부로 오래되고 낡았지만, 중세풍의 가구, 부엌을 가진데다 아름다운 테라스까지 있는 현지인의 집이었다. 얼마 전 시네마 토크에서 보았던 '하녀의 일기’에서나 나올듯한 중세식 옷장과 침대 등의 가구와 동그란 문고리가 열쇠, 아주 오래되보이는 화덕과 식기류, 거실의 등과 가구들. 열쇠로 문을 열 때마다 마치 중세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는 통로를 통과하는 기분이 들었다. 테라스에서도 성벽과 올드 하버 Old harbour 가 보였고 아드리아해가 매일 아침저녁으로 눈앞에 펼쳐졌다.
두브로브니크는 해상무역으로 부를 축적한 도시 국가로 아드리아 해안에서는 유일하게 침략당하지 않고 자유를 지킨 곳으로 그래서인지 이곳에는 왕이 없고 귀족, 시민, 기술자의 세 신분만 있었다고 한다. 증명이라도 하듯 구시가지에 있는 성 요한 요새 St. John’s Fortress 입구에는
오래전부터 이미 자유에 대한 가치를 지키고 존중해 온 동유럽의 작은 나라. 비록 여러가지 여건으로 경제발전은 더디고 잘 살지는 못할지 모르겠지만 그들의 자존감과 여유로움을 배우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두 번의 대지진과 수많은 외세의 침략이 이어지면서 도시 상당 부분이 파괴되기 전에는 부를 축적한 도시 국가답게 플라차 대로 주변에는 화려한 건물들이 즐비했다고 한다. 지금의 건물들은 지진 이후 복원한 것들이다.
이 도시에 반한 영국 극작가 버나드 쇼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다섯 번째 애니메이션 "마녀 배달부 키키"에 나오는 붉은 지붕의 배경이 바로 이곳이다.
필레 게이트 Pile Gate는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 쪽으로 들어가는 메인 게이트로, 돌다리와 나무로 된 도개교를 지나 문으로 들어가면 다시 구시가로 통하는 작은 문이 나오는 이중문의 구조이다. 유럽 중세의 성문의 모습인데, 문 위에는 두브로브니크의 수호성인인 성 블라이세의 조각이 보인다. 전설에 따르면 베네치아 군대가 두브로브니크를 침략했을 때 성 스테판 성당의 스토이코 신부가 도시를 구원해 달라고 기도를 했고, 그때 블라호 성인이 나타나 베네치아 군대의 전략을 알려주어 그들을 격퇴할 수 있었다고 한다. 조각의 한쪽 팔에는 지진이 일어나기 전의 두브로브니크 도시 모형을 들고 있다.
필레 게이트를 통해 구시가로 들어서면 시원하게 뻗은 길, 플라차 대로 Placa Ulica, 혹은 스트라둔 Stradun이라 불리는 거리가 나타난다. 둘 다 ‘큰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새하얀 석회암 대리석 보도가 깔려 햇살이 부딪치면 닳아온 세월만큼이나 환한 윤기를 낸다. 두브로브니크는 두 차례의 강한 지진이 일어나고 나서 도시를 모두 대리석으로 지었다고.
플라차대로 초입에서 만나게 되는 오노프리오 분수 Onofrio's Great Fountain는 스르지 산에서 물을 끌어와 이곳의 사람들에게 식수를 공급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중앙에 커다란 돔 모양의 석조 물 저장고가 있고 그 아래는 16면에는 각각 다른 16개의 얼굴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는데, 입 부분에 물이 솟아나는데 지금도 이 광장을 지나는 사람들의 갈증을 풀어주고 있었다.
분수 건너편에 도시 성벽을 따라 북쪽으로 길게 늘어선 프란체스코 수도원은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 양식으로 건축되고 오래된 프레스코 기법으로 장식되었는데, 그 안에는 로마네스크의 아름다운 회랑을 가진 정원과 박물관, 도서관이 있다. 박물관은 중세의 다양한 소장품들이 꽤 볼거리를 제공하는데 입장료가 아깝지않다.
입구의 문 위에는 죽은 그리스도를 안고 슬픔에 잠겨있는 성모 마리아의 조각, 피에타가 눈에 띈다. 수도 원안에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오래된 말라브리카 mala Braca, 크로아티아어로 '형제들'이란 의미의 약국이 유명한데, 지금도 영업 중이고 장미 크림이 유명하다고 했지만 향이 너무 진해 나는 구입하는 걸 포기했다.
플라차 대로를 걷다가 동쪽 끝에 이르면 종탑이 보이고 그 앞의 작은 광장이 루자광장 Trg Luza이다. 이 종탑은 1444년에 세워진 것인데 지금도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기 위해 매시간 정각이면 종이 울린다.
광장 앞에는 8세기에 살았다는 전설적인 기사 롤랑 Roland 동상을 만날 수 있다. 롤랑은 8세기에 살았던 전설적인 기사로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유럽을 구하기 위해 용맹히 싸우다 전사한 이야기가 두브로브니크에 전해졌고, 그의 독립과 자유정신이 평가되어 롤랑 상이 세워지게 되었고, 그의 무용담은 영웅 서사시 <롤랑의 노래>로 전해진다. 왼손엔 방패를 오른손에는 칼을 들고 있는데, 이 칼이 바로 요정들이 만들었다는 명검 뒤랑달 Durendal이다. 칼을 들고 있는 롤랑의 오른쪽 팔꿈치에서 손까지의 길이 51.1cm는 두브로브니크의 팔꿈치라고 불리는데, 두브로브니크가 교역의 중심지였던 시절에는 이것을 길이의 단위로 삼고 누구나 이곳에서 길이를 확인하게 하여 부정행위를 방지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광장 한편에는 스폰자 궁전이, 옆으로 우아한 모습의 성 블라이세 성당 Church of St. Blaise 이 보인다. 입구에는 필레게이트와 마찬가지로 수호성인인 성 블라이세 성인의 조각상이 있다. 수호성인에게 봉헌된 성당이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두 번에 걸친 지진과 화재에도 기적과 같이 피해를 입지 않았고, 내부의 제단에 있는 은으로 만든 성 블라 시우스의 조각상은 화재 당시 내부의 모든 금속 장식과 조각품이 녹아내렸으나 유일하게 무사했다고 한다.
성 블라이세 성당 옆으로 최고 통치자를 일컫는 렉터가 머물던 공간인 렉터 궁전 Knežev dvor이 보이고, 그 뒤로는 두브로브니크의 중심 성당인 두브로브니크 대성당 Katedrala Velike Gospe이 보인다. 크로아티아의 국보급 보물들을 다수 소장하고 있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거장 티치아노가 그린 <성모 승천> 제단화가 유명하다는데, 직접 보니 글쎄, 눈물을 흘릴 만큼 강한 느낌까지는...
구 시가를 둘러본 후 동문인 플로체 게이트를 나와 스르지 산 꼭대기에 위치한 스르지 산 전망대 Planina Srđ로 향했다. 전망대는 케이블카가 운영되고 있어서 시내전경을 보며 이동할 수 있다.
새파란 아드리아 해가 품고 있는 유럽에서 가장 완벽한 성벽 도시이자 중세 도시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해가 지기 전부터 새빨간 낙조와 구시가에 하나 둘 불이 켜진후 반짝거리는 황홀한 모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