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히데코, 모두의 숙희

by 일상채색가 다림

어릴 적 부모를 잃고 변태적 성향의 이모부 밑에서 자라며 심각한 학대를 받아온 주인공 히데코. 그녀가 자신의 하녀로 집에 들어왔던 숙희와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히데코와 숙희는 이모부가 집을 비운 틈을 타 후지와라 백작(한국인이면서 백작이라고 하고 다니는 것부터 어째 찌질하더라니!)과 탈출 계획을 세운다.


히데코와 숙희는 이모부가 애지중지 아끼던 수천, 아니 수만 권은 돼 보이는 변태 서적을 시원하게 망가뜨린 후 드디어 평생을 단 한 번도 나가본 적 없는 대저택의 담벼락 앞에 서게 되었다. 하지만 히데코는 담벼락 앞에서 갑자기 망설인다. 내가 이 담을 넘을 수 있을까? 내가 넘어도 되는 걸까? 이걸 넘어서 나가면.. 정말 나에게 자유는 주어질까?


영화를 본 사람은 알겠지만, 히데코가 넘을까 말까를 망설이던 그 담은 히데코의 무릎쯤이나 닿을까 싶은 아주 낮은 담이었다. 이모부를 포함한 자신이 평생 만났던 모든 이들에게 정신적, 신체적 학대를 받으며 자란 그녀는 야트막한 담벼락 앞에서도 이것을 내가 넘을 수 있을지 망설이게 된 것이다. 그렇다. 인간은 이토록 나약한 존재다. 또한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나 어떤 영향을 받느냐에 따라 한 인간의 인생은 예측하기 곤란할 정도로 다양한 변화를 맞을 수 있다.


한참을 망설이는 히데코를 바라보던 숙희는 자신이 들고 있던 그들의 짐가방을 히데코의 발 앞에 놔준다. 내가 감동했던 부분은 바로 이 지점이다. 어린 시절부터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으며 살아온 숙희에게 아마도 그 낮은 담은 콧방귀도 뀌어 지지 않을 하찮은 담이었을 것이다. 당연히 그 앞에서 망설이는 히데코가 등신처럼 보였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망설임 없이, 혹은 고개를 갸우뚱하지도 않고 히데코가 담을 잘 넘을 수 있게 가방을 놔주고 그녀의 손을 잡아 에스코트한다.


내 인생에 히데코의 숙희 같은 존재가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내 인생은 아주 성공한 인생일 것이다. 또한 내가 누군가의 인생에 숙희가 되어줄 수 있다면, 그래서 누군가가 낮은 담벼락조차 넘지 못해 주저앉으려고 할 때, 내가 거리낌 없이 나의 짐가방으로 계단을 만들어 줄 수 있다면, 그 또한 성공한 인생일 것이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히데코이자, 누군가의 숙희다.






2021. 12. 16.

영화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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