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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채색가 다림 Aug 20. 2021

붉은 유년

생후 434일의 기록

오줌을 누면 검은 벌레들이 

굼실굼실 기어 나오는 꿈속에서

끝없이 가위눌리던 밤 나는 나에게로 도망쳤습니다.

나를 받아줄 곳은 당신이 아니었지요.

붉은 심장을 들고 

내가 뛰어갈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내 안은 참으로 어두웠습니다.

멍처럼 푸른 달이 닿는 어디나 비명이었습니다.

으깨어진 꽃잎뿐이었습니다.

이들을 먹고 나는 자랐습니다.

하지만 어린 가슴이 풀 무덤이 되는 줄도 모르던 당신,

간혹 햇살 찢기는 소리를 들으며 

당신 생애의 어떤 시간을 견뎠습니다.

 안에 가시를 세워가며 

붉은 속울음을 참았던 날의 기억을 파먹으며 

나이가 들었습니다.

내겐 더 이상 남은 추억이 없습니다.

헛것인 나를 어미로 삼은 아이들

 맑은 영혼을 통과하면서 

나는 오로지 어른이 되었습니다.


- 붉은 유년, 이운진 -




우연히 읽은 한 편의 시는 이번 주 내내 다음날 눈이 안 떠지고 싶다는 생각으로 살아온 나의 가슴에 비수가 되어 꽂혔다. 그야말로 헛것 그 자체였던 이번 주의 나. 나는 너무나 어두웠고 비명을 지르기 바빴고, 내가 쉴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지난주 금요일 오전이었다. 그날도 여러번의 밤중깸으로 잔뜩 고생하며 아이에게 몇 번이나 얼굴과 몸을 걷어차이며 잔 것도 아니고 안 잔 것도 아닌 상태로 아침을 맞이했다. 당연히 자의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빨리 자기를 안고 침대를 벗어나라는 아이의 칭얼거림으로 시작된 하루였는데 시계를 보니 겨우 7시. 월요일부터 켜켜이 쌓인 피로와 분노가 한순간에 폭발했고, 나는 아이에게 표정과 제스처, 험악하고 차가운 말투로 나의 분노를 마구 표출했다.


나에게 계속 장난감과 책을 가져오며 한참을 투정 부리고 치대던 아이가, 평소와 달리 차갑고 퉁명스럽고 급기야 화까지 내며 자신을 밀어내는 엄마를 보며 짓던 그 표정을 아마 나는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내 얼굴을 곁눈질로 살피며 왜 엄마가 평소와 다르지 라는 듯한 표정. 결국 엄마와 노는 것을 포기하고 겸연쩍게 돌아서서 혼자 책을 뒤적거리던 아이의 뒷모습... 떠올릴 때마다 내 마음이 찢기고 붉은 속울음이 나오는 모습.


아이에게 내는 짜증과 화는 표출되는 즉시 후회가 된다. 문제는 후회를 하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아니 같은 포인트에서 똑같이 화가 난다는 게 문제다. 포기가 안 되는 거다.


육아는 포기의 연속이고 포기해야 아이도 엄마도 산다. 온전히 나 자신을 내려놓아야 그나마 덜 스트레스받는다. 자꾸 내 것을 지키려 하면 그것을 못 지키게 막는 여러 상황이나 아이에게 분노가 일어난다. 그렇게 하나씩 내려놓다 보면 세월이 가고 이미 훌쩍 커버린 아이에게 미안해하겠지...


괴롭고 어렵다. 엄마라는 자리.


Photo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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