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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채색가 다림 Mar 21. 2022

토닥토닥

오늘 아이가 처음으로 어린이집에서 낮잠까지 자고 왔다. 


예상외로 울지도 않고, 애착 이불 주고 토닥토닥해주니 금방 잠들었다고.

1시간 정도 자고, 밖에서 인기척이 들리니 일어났다고 한다. 

집에 와서도 피곤해하거나 짜증 내지 않고 잘 놀고, 저녁도 잘 먹었다.


나와 남편 없이 낯선 곳에서 잠을 잔 것이 처음이어서 어땠는지 궁금해서 이것저것 물어봤다.


"하율아, 오늘 000 어린이집에서 낮잠 자니까 어땠어?"

"00(담임교사 별칭)가 토닥토닥해줬어~"

"그랬어? 그래서 하율이가 금방 코잠 코잠 할 수 있었구나. 너무 좋았겠네."

"근데 하율이가 졸려서 울었어."

"웅? 00(교사)이 하율이 안 울고 잘 잤다고 했는데?"

"하율이가 졸려서 울었지~"


울지 않고 잘 잤다고 들었는데 왜 자꾸 울었다고 하나 했더니만,


"00(같은 방 친구 이름)가 졸려서 울었어~"


친구 이름을 이야기한 건데 내가 하율이로 잘못 알아 들었던 것.

(말문이 트인 지 이제 두 달 정도밖에 안돼서 아직 발음이 많이 뭉개진다.)


아이의 입에서 친구의 이름이 거론된 게 처음이었다. 유난히 또래 친구들을 불편해했던 아이라 집에 또래 아이들을 초대하는 것도, 다른 아이 집에 놀러 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계속 시도를 해보면 나아졌으려나 싶지만 팬데믹까지 겹쳐 아예 포기하고 아이와 둘이서만 늘 돌아다녔다.


어린이집 적응 초반에도 늘 같은 방 아이들과 멀찍이 떨어져서 혼자 놀던 아이였는데 불과 3주 만에 "꿀벌들이랑 놀았어~" "00랑 모래 놀이했어~"라고 친구들을 이야기할 줄 알게 되었다. 워낙 친구들을 불편해했기에 같은 방 아이들의 이름도 모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이는 이미 같은 방 친구들의 이름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00가 졸려서 울었구나. 내일 혹시 00가 또 졸려서 울면, 하율이가 토닥토닥 달래줘. 엄마가 하율이 울면 토닥토닥해주는 것처럼. 알았지?" 


내 말에 아이가 나를 쳐다본다. 아이의 등을 토닥토닥해주었다. 그러자 아이가 말했다.


"토닥토닥~ 00가 졸려서 울었어. 토닥토닥~"


아이가 처음으로 불러준 같은 방 친구의 이름,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2022. 03. 21.

어린이집 적응 3주 차.

생후 1030일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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