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드라마 <나의 해방 일지>에는 늘 개새끼만 만나 호구 연애를 하고, 집과 직장에서 이리저리 치이기 바쁜 여주인공이 나온다. 그녀는 어느 날 갑자기 마을에 나타나 낮에는 아버지의 일을 돕고, 저녁에는 술만 퍼먹는 남주인공에게 대뜸 걸어가서는 "난 한 번은 채워지고 싶어. 그러니 날 추앙해요. 사랑으론 안돼. 추앙해요."라고 말한다.
추앙의 사전적 의미는 '높이 받들어 우러러 봄'이다. 한 번도 마음이 가득 채워 흘러넘치는 것을 느껴보지 못한 여주인공에게 이미 사랑은 우습다. 절절한 사랑 따위로는 그녀의 텅 빈 마음을 채울 수 없고 진정한 해방의 기쁨도 누리게 할 수 없다. 높이 받들어 우러러 봐주는 정도는 해줘야 채워질 수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그녀는 텅 비어 있다.
이 대사가 여러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드라마의 인기가 높은 것을 보면 해방되고 싶고 채워지고 싶은 사람은 비단 드라마 속 여주인공과 나만 그런 것은 아닌가 보다.
누군가에게 추앙까진 아니더라도 일정 수준의 돌봄을 제공할 때, 아무리 그런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해도 어느 순간 내가 주는 양만큼의 돌봄을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면 억울함을 느꼈다. 그 억울함은 금세 인간에 대한 지겨움과 두려움으로 바뀌고, (상대방이 모르는 사이) 내 마음속에서 삼진 아웃제도를 실시했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억울함이 느껴진 순간 가차 없이 상대방은 내 인생에서 삭제되었다.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인연은 그렇게 삭제되겠지만, 주는 만큼 돌려받지 못한다는 것을 제대로 인정할 줄 아는 자세를 갖췄더라면 삭제되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져 왔을 관계도 분명 있었다.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의존성.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습성은 늘 나를 숨 막히게 했다. 남에게 기대야 살아갈 수 있는 나도, 나에게 기대기를 원하는 타인도 때론 너무 지겨웠다. 하지만, 이제는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이 사람에게 준 돌봄, 더 나아가 추앙의 양을 굳이 그 사람에게 돌려받으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저 사람이 해주면 더 좋겠지만 그(그녀)가 그렇게 못해주더라도 이 세상의 또 다른 누군가가 그걸 나에게 돌려준다 생각하니 덜 억울해졌다. 어차피 모든 사람은 100% 주기만 하는 사람도, 100% 받기만 하는 사람도 없다. 단지 내가 받고 있다는 것을 몰랐을 뿐이다. 억울해하지 말자. 자각하지 못할 뿐 어디선가, 누군가는 나를 추앙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