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들이 뒤집는 세계

가녀장의 시대, 이슬아

by 일상채색가 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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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 이슬아의 이슬아 작가의 첫 번째 장편소설

이제 그녀의 이력이 조금 특별해지지 않았을지는 모른다. 그녀가 시도했던 시스템과 비슷한 방식으로 독자와 소통하는 작가들이 많아졌으니 말이다. 하지만, 매일 한 편씩 이메일로 독자들에게 글을 보냈던 <일간 이슬아>가 처음 시작했던 그 시기엔 어떤 등단 절차나 시스템을 거치지 않고 독자와 직접 소통하는 방식을 택한 그녀의 행보가 신선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 역시 <일간 이슬아>의 열혈 팬이었고, 그곳에서 그녀가 처음 사용한 '가녀장의 시대'라는 워딩과 글은 각종 SNS에 구구절절 회자되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미 구독 서비스를 통해 접한 이야기였지만, 책으로 출간된다고 하여 기대를 하고 있었다. 도서관에 신간 신청을 해 두고 입고되기까지 정말 오랜만에 두근거리며 기다린 책이었다.


가녀장의 시대 간략 줄거리

소설이라고 하기엔 마치 작가 본인의 현실을 그대로 옮긴 듯하다. 소설 속의 슬아, 복희, 웅이는 그녀의 에세이에서 볼 수 있었든 굉장히 입체적으로 생생하게 살아있다.


소설 속 슬아는 말 그대로 '가녀장'이다. 집안의 가장으로 '낮잠 출판사'라는 출판사를 운영하며 글을 쓰고, 글쓰기를 가르치고, 이곳저곳 강연을 다닌다.


슬아는 자신의 모부를 출판사에 직원으로 고용하여 자신이 글쓰기에 모든 에너지를 쏟을 수 있도록 모든 돌봄 노동과 잡무를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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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에 나온 것처럼 아비 부(父)의 자리에 계집 녀(女)를 넣었을 뿐인데 소설 거리도 되지 않을 듯한 평범한 일상은 톡톡 튀는 에피소드로 변신한다.


잘 봐, 이런 가정도 있을 수 있어

소설 속 슬아는 가녀장으로 모부를 책임지고 있는 자신의 삶 속에서 때때로 자신의 뿌리인 할아버지를 떠올린다.


자신을 지금까지 키워 온 모부의 지난 시절을 떠올리기도 한다. 또한 우리 사회에 견고하게 박혀있는 가부장제 아래에서 그 시절의 아버지들이 숱하게 저질러온 실수를 가녀장인 슬아도 저지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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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이 이 부분일 것이다. 슬아는 완벽하지도, 매사에 전투적인 여성도 아니라는 것을 담백하게 까발려버리는 작가의 자세.

무작정 가부장제는 옳지 않고, 가녀장의 시대로 가자!는 '나를 따르시오'식의 접근이 아니라, '잘 봐. 이런 세상이 있다면 어떨 것 같아? 나는 이미 비슷하게 살고 있는데, 꽤 괜찮은 삶이야.'라고 말해준다.



된장을 담그며 질문을 던지다

인상 깊었던 구절은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소설 초중반부 복희가 된장 담그기를 위해 출장을 간 에피소드는 잠시 책을 덮은 뒤 여러 생각을 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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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매 끼니 집에서 식사를 즐기는 슬아에게 된장은 빠질 수 없는 식재료 중 하나다. 이 집안을 먹여살리는 된장은 복희의 모부로부터 전해내려온다.

오십 대 중반의 복희는 영영 그들이 모부의 된장을 받아먹으며 살 수는 없는 노릇이나 슬아에게 휴가가 아닌 '출장'으로 된장을 배우러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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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 부분에서 잠시 울컥할 수밖에 없었다.


시대가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김장이나 장 담그기로 대표되는 대부분의 가사와 돌봄의 노동은 여전히 여성들의 몫이다. 집안의 남성들은 '도와주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몫을 다 했다고 여기는 경우가 여전히 우세한 것도 사실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되지 않는 돌봄의 영역을 맡는다는 것은 어찌 보면 비상식적인 일이다. 내 노동력에 대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없음에도, 기꺼이 나의 수고를 바치는 일이니 말이다.


다행히 나는 양가 모두 대규모 김장이나 제사, 차례 문화가 없는 집에서 살고 있고 가벼운 마트 김치의 맛으로도 목이 메어 눈물을 흘리지 않아도 되는 입맛을 지녔다.


간혹 지인들을 통해 어머니들의 김장 김치를 얻어먹을 때마다 복희와 존자가 떠오를 것 같다. 지난 세월 묵묵히 돌봄과 가사 노동을 무상으로 제공해 온 그녀들과 우리의 딸들 사이에 놓인 나, 그리고 내가 취해야 할 자세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틀을 벗어난 딸들이 만들어가는 세계

<가녀장의 시대>에서 이슬아 작가는 복희가 가진 삶의 태도에 대해 아래와 같이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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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희는 슬아의 엄마지만 복희가 가진 태도야말로 틀을 벗어난 딸들의 자세가 아닐까 생각한다. 현재의 가족제도는 분명 대안을 찾아가는 중이다. 그 안에서 새로운 방식의 관계를 맺어가는 시도들이 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우리가 중요하게 여겨야 할 부분은 그중에서 어떤 것도 정답과 오답으로 나눌 수 없다는 것이다.

여성이자 딸의 정체성을 가진 이들이 전통적인 가부장제를 벗어나 자유를 누리면서도 그 길이 주변인들과의 관계를 포기해야 하거나 싸우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이슬아 작가는 꿈꾸고 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 집안에서 누가 경제권을 쥐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누가 쥐든 그 안에 사랑과 대화, 평등과 명랑함이 깃들어 있길 바란다.

말처럼 쉽지 않을 복잡한 그 과정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남과 자신을 훼손하지 않고 행복을 찾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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