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상채색가 다림 Aug 25. 2021

안녕, 분유야

생후 397일의 기록

조리원을 나오자마자 단유를 했다. 양이 적기도 했지만(조리원에서 이 정도면 늘 법도 한데 참 적다고 의아해할 정도로) 출산 후 바로 가슴에 생긴 물혹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단유를 해야만 했다. 젖몸살이나 단유 마사지가 필요 없이 자연스럽게 젖이 마를 정도로 양이 적었던 게 오히려 감사했다.


​그렇게 우리 아이는 생후 20여 일 만에 "완분"의 세계로 접어들었고, 신생아 시절 잠시 변비가 있었던 것 말고는 어떤 분유를 먹여도 너무나 잘 먹어주었다. 오히려 너무 자주 달라고 해서 우는 아이를 안고 텀을 맞춘다고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지금 생각하면 그냥 더 달라는 대로 줄걸 그랬다) 그런 고생마저도 백일을 기점으로 자연스럽게 먹는 텀이 길어지며 엄마를 편하게 해 주었다. 자주 게우는 편이긴 했지만 어떤 분유를 먹여도 게워내서(13개월인 지금도 가끔 게운다) 아이가 커감과 동시에 그러려니 하며 마음을 놓았던 것 같다.


​이유식을 시작하기 전까지 내 아이의 주식이었고, 돌을 지난 지금도 아침과 저녁 두 번씩 아이의 배를 든든하게 채워주는 분유가 드디어 마지막 한통이 남았다. 마침 얼마 전 진행한 영유아 검진에서도 평균 이상으로 잘 크고 있는 아이므로 분유를 끊고 생우유를 먹이라는 이야기를 들어서 더 이상 분유를 구입하지 않았다. 아이를 키워본 부모라면 모두 공감하겠지만, 분유값 버느라 힘들다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었음을 엄마가 된 후 실감했다. 특히 음식으로 정체기 없이 늘 많이 먹는 아이를 키우는 나로서는 돌아서면 새 분유를 따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참 이상했다. 마지막 분유통을 뜯는데 기분이 묘했다. 모유 수유를 하다가 단유 하는 것도 아니고, 분유인데 뭔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속이 허전해졌다. 그저 작고 부서질 것만 같던 내 아기가 벌써 돌이 지나 분유를 끊는다니. 기분이 묘했다. 한참 분유에 이유식에 간식에 어디를 가도 짐을 한가득 들고 다녀야 하는 내 어깨가 너무 무거워서 제발 분유라도 빨리 졸업했으면 하고 투정을 부렸던 적이 있다. 돌 지나면 가차 없이 끊어버릴 거라고 말하고 다니기도 했다. 사람의 마음이란 얼마나 간사한지.. 막상 끊을 때가 되니 이 아쉽고 허전한 감정은 또 뭐란 말인가. 정작 아기는 그렇게 달라고 보채지도 않는다. 사실상 정말 수유를 끊어야 할 시점이 된 것이 fact인데도, 오히려 엄마인 내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허전해하고 있다.


​아이가 기저귀를 떼고, 어른 음식을 같이 먹기 시작하고, 기관에 들어가고, 학교에 가게 되고... 아이가 세상을 향해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내 마음에 이렇게 찬 바람이 한 번씩 훅 들어왔다 나갈 것이다. 육아라는 게 참 묘하다. 빨리 시간이 흘러서 아이가 커주길 바라면서도 정작 그 순간이 오면 너무 아쉽다. 그저 더 잘할 걸 하는 아쉬움만 남는다. 그림처럼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며 늘 매 순간 후회하지 않게 최선을 다하자 다짐하지만, 정작 기다리던 내일이 오면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아이의 에너지에 숨이 가빠진다. 정신없이 몰아치다 찬바람 한번 맞고 정신 차리기를 앞으로 몇 번을 더 반복할까? 이 또한 내가 커가는 과정일 것이다.


​늘 별생각 없이 뜯고, 먹이고, 다 먹으면 재활용 수거함으로 버려지던 분유통인데 지금 남아있는 저 마지막 한 통은 쉽사리 버리지 못할 것 같다.


부족했던 나의 모유 대신 내 아이를 1년간 성실하게 키워준 분유야, 고마웠어. 그리고 수고했어.


안녕, 분유야.




이 글은 작년 6월 와락글방이라는 단기 글쓰기 모임에서 쓴 글 중 하나다.


에필로그처럼  가지 이야기를 덧붙이자면,


1) 아이는  이후로 다시 분유를 찾아서 한참  분유를 먹은  생우유로 갈아탔다. 글 쓴 엄마가 민망하게스리.

2) 나도 오늘 글을 옮기며 알았다. 이제 언제가 마지막인지 기억도 안 날 만큼 게우지 않은지 한참 되었다! 역시 모든 게 시간이 약이었구나.

3) 수많은 엄마들이 모유수유로 고통스러워한다. 애를 낳으면 자동으로 아무런 수고와 고통 없이 모유가 쭉쭉쭉 잘 나오는 게 절대 아니다. 하지만 실망하지 말자. 대한민국 여성의 경우 치밀 유방이 많아서, 애초에 내 가슴이 소위 말하는 ‘참젖’ 일 경우는 많지 않다. 난 무슨 일이 있어도 완모를 할 것이라는 생각이 완고하다면 그 또한 응원하지만 생각보다 양이 적고 나처럼 늘지 않아서 분유를 먹이며 죄책감 갖지 말기를.. 모유만이 엄마가 아이에게 주는 사랑이 아니다. 참고로 저렇게 완분한 우리 율뽕이? 어느 누구보다 크고 무겁고 건강하다.

4) 이 시절 율뽕이 얼마나 귀여웠는지 한번 보고 가세요들.


저렇게 기어다니던 시절이 있었답니다

모든 사진 & 영상 by 딩크엄마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하는 내 아이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