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너의 하늘이 깨끗하길

사마에게(For Sama)

by 일상채색가 다림

저녁 6시.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황홀한 요즘, 저녁 시간의 우리 동네는 조용하고 평화롭다. 아이가 잠시 혼자 노는 틈을 타 후다닥 차려내야 하는 식사이기에 몸도 마음도 바쁘지만, 부엌 창 밖으로 보이는 멋진 하늘과 차분하고 시원한 공기에 잠시 넋을 놓게 된다.


저녁 공기의 화룡점정은 코로 스며드는 이웃집의 음식 냄새들이다. 오늘 누군가의 저녁상엔 생선 구이가 올라가나 보다. 어랏, 이번에는 맛있는 찌개 냄새가 난다. 그리고 어디선가 흘러들어오는 삼겹살 굽는 냄새까지. 그렇게 나와 이웃들은 오늘도 변함없이 저녁상을 준비하고 맛있는 음식을 가족과 함께 나눈다.


평범한 나날들의 소중함. 얼마나 귀한지 못 느끼며 살아오다 우리는 코로나19라는 질병을 마주하며 일상의 행복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깨달았다.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이 꽉꽉 들어선 콘서트장(난 코로나 이후 콜드플레이의 공연 실황 영상을 볼때면 그렇게 눈물이 난다), 서로 어깨가 부딪힐 듯 가까이 앉아서 먹고 마시는 레스토랑과 카페, 밤늦도록 카페와 술집에서 이어지는 친구들과의 수다, 그리고 그때는 없었던 마스크까지. 이 모든 것이 코로나와 함께 멈췄다.


정말 멋진 대도시였던 알레포


그리고 시리아 알레포(Aleppo).


생기 넘치고 아름답던 이 도시는 10년간 이어지고 있는 내전으로 폐허가 되었다. 나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시절, 아니 그 이전부터 삶의 터전이 된 이곳에서 그들은 소중한 삶의 터전이 무차별 폭격에 무너지고 가족과 친구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봐야 했으며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폭탄을 피하기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하늘을 쳐다보며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아름답던 저 도시가 이렇게 폐허가 되었다


이 영화는 와드라는 여성이 시리아 알레포에서 거주하면서 7년 간 촬영한 내전의 참상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작품이다. 영화 속 모든 폭격 장면과 낭자한 선혈, 피 흘리며 죽어가는 사람들은 100% 리얼이다.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그녀는 꿋꿋하게 시리아 정부의 무차별적 폭격에 죽어나가는 시민들의 참상을 기록했고, 그곳에서 만난 동지인 함자와 결혼하여 아이를 낳는다. 그 아이의 이름이 바로 사마(Sama)다.


이런 지옥 같은 곳에서 너를 낳아 미안하다고 하는 엄마의 마음도, 엄마 뱃속에서부터 들어서 그런지 폭격 소리에 별로 놀라지 않는 아이의 모습도 나를 울게 했지만 가장 가슴 아팠던 장면은 집에 느닷없이 폭탄이 날아와 동생을 잃고 온 몸에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내 동생은 잘못한 것이 없어요!” 라며 절규하는 한 소년의 모습이었다. 동생을 잃고 울부짖던 아이는 아직 너무 어려 보였고, 폭격으로 죽은 그 동생은 더 어렸다.


그리고 그렇게 허망하게 보낸 아들의 시신을 끌어안고 시신을 대신 옮겨주겠다는 의사에게 엄마는 말한다.


이 아이는 내 아들이에요.
내가 안고 가겠어요. 내 새끼예요.


나라도 그랬을테지. 방금 전까지 멀쩡히 마당에서 잘 놀던 내 새끼가 죽어버렸는데. 이제 더는 안아보지도, 살 냄새를 맡아볼수도 없이 하나뿐인 귀한 내 새끼가 죽었는데 어미인 내가 끝까지 안고 가야지 누가 안겠나.


죽은 아들을 끌어안고 울부짖던 엄마를 보며 나는 무너져 내렸다. 저런 비극적인 일이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을 누가 해주겠는가. 내가 그녀보다 엄청 잘나서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다. 나도 얼마든지 10년째 내전이 일어나는 곳에서 살면서 언제 내 집에 폭탄이 떨어질지 모르는 공포에 떨며 아이를 키울 수도 있었다. 우리는 모두 그저 그들보다 조금 더 운이 좋았던 것뿐이다.


비록 그들은 삶의 터전을 잃고 다른 나라와 도시로 떠나야 했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하루하루를 살아냈으며 용감하게 모든 것을 기록한 그녀로 인해 시리아 내전의 참상이 전세계에 더 생생하게 알려질 수 있었다.


함자, 사마 & 와드


사마는 이슬람어로 하늘이라는 뜻이다. 내전이 시작된 이후 시리아 사람들은 내일은 하늘이 깨끗했으면 좋겠다는 인사를 한다고 한다. 날씨가 좋았으면 좋겠다가 아니라, 내일은 폭격이 없는 하늘이었으면 좋겠다는 뜻. 아마 이 영화의 감독인 와드와 그녀의 남편 함자도 그런 소망을 담아 딸의 이름을 사마라고 짓지 않았을까.


평화로운 저녁 창문 너머로 느껴지는 일상의 행복.

그리고 아무런 잘못 없이 그것을 박탈당한 사람들.


그들의 하늘이 맑고 조용해지길 진심으로 기도한다.

서로를 혐오하고 공격하고 죽고 죽이는 의미 없는 행동을 제발 멈춰주길 바란다.



2008년 아름다웠던 알레포 사진 from 인별

@syriabefore2011

(이 계정에는 내전 이전의 시리아 곳곳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너무나 아름다운 곳들이었다. 가보지 못한 것이 한스러울 정도로 아름답다)


그 외 사진 from 사마에게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