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겨땀이 두렵지 않은 이유

당신의 두 번째 세 살은 어떤가요?

by 일상채색가 다림

오소희 작가는 <엄마 내가 행복을 줄게>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은 유년을 두 번 사는 축복'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지금 두 번째 세 살 인생을 살고 있네요.


첫 번째 세 살을 사는 아이는 늘 에너지가 넘쳐요.


아침엔 깨우지 않아도 벌떡 일어나고, 밤엔 독서 열정이 타올라요. 방금 읽은 책을 또 읽어도 흥미진진합니다. 만지지 말라는 모든 물건은 스릴 넘치는 친구이고요. 별 것 아닌 놀이에 빠지면 먹는 것도 잊어요. 내가 낳았는데 낯선 존재로 보이는 기분, 낯설지 않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넣는 중입니다.


두 번째 세 살을 사는 저는 늘 에너지가 딸려요.

늘 더워요.


선선한 가을바람을 맞으면서도 땀을 흘리며 숨이 가빠집니다. 그렇게라도 시간과 노력을 넣으니 더 이상 낯설지는 않아서 다행이긴 합니다만. 첫 번째 세 살을 쫓아다니며 이마와 인중, 겨드랑이와 등짝은 땀 폭격을 맞아요. 임신과 출산을 겪으며 그간 닫혔던 모든 땀샘이 열리기라도 한 것인지, 아니면 지난 세월 수줍게 나오지 못하다 '이제 너의 몸은 이런 걸로 수줍어하지 않는 내공의 소유자다'라고 누가 인증이라도 해준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대책 없이 온몸의 땀샘이 열릴 정도로 육아의 모든 관문은 저에게 두려움의 연속이었어요. 모든 게 처음이었거든요. 제가 견딜 수 없었던 가장 큰 괴로움은 모든 해답이 결국 시간이었다는 겁니다. 저에게 시간이 답이라며 건네던 주변 사람들의 따스한 위로는 제 마음에 비수가 되어 꽂혔습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나의 소중한 시간과 수천 리터의 땀과 눈물이 20년 동안 지속적으로 공급되어야 끝나는 작업. 그것이 육아였죠


정세랑 작가는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에서 외부로부터, 사회로부터 주입되지 않은 종류의 욕망을 가지는 것은 우리에게 힘찬 엔진이 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성장에 대한 욕망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해야 한다고 하지요. 그것을 '최대 가능성'이라고 정리합니다.


첫 번째 세 살을 사는 나의 아이는 충분히 자신의 최대 가능성을 펼치며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두 번째 세 살을 사는 나는?


두 번째 세 살은 겨우 겨땀에 창피해하는 나를 벗어나 나를 더 잘 들여다봅니다. 첫 번째 세 살에게 그걸 잘 배우고 있거든요. 수줍어하던 땀샘이 활짝 열려 땀의 최대 가능성을 갱신하듯 나의 성장, 나의 욕망이 가는 최대치를 가늠해봅니다.


아이가 저를 유독 힘들게 한 날이면 아이가 나의 삶을 방해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복잡해졌습니다. 그러다 아이에게 미안해져서 숨죽여 울기도 했지요. 땀샘이 터지더니 눈물샘도 덩달아 터졌는지, 두 번째 유년기를 보내며 저는 참 많이 울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 마음을 오히려 더 힘들게 하는 타인의 위로에서 벗어나 입은 닫고, 열린 저의 눈물샘과 땀샘에 대해 기록하기 시작했어요.


때론 제가 육아가 힘들어서 글을 쓰며 힘듦을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글을 쓰도록 하기 위해 힘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어느 순간 제 안에 조용히 잠자던 글에 대한 불꽃이 마침 좋은 연료를 만나 활활 타오르는 것 같았거든요. 엄마가 되기 전에도 꾸준히 글을 써오긴 했지만 이것은 처음 느끼는 쾌감이었습니다.


땀샘이 열리자 저는 비로소 제 자신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 하고 싶은 것, 가지고 싶은 것에 대해 알고 싶어 졌어요. 나의 모든 에너지를 아이에게 다 뺏기고 도태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두 번째 세 살은 저를 이미 또 다른 세계로 이끌고 있었습니다.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 것이죠.

저의 겨드랑이는 오늘도 마를 날이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더 이상 겨땀이 두렵지 않아요.


이건 땀이 아니라, 제 연료거든요.


땀과 눈물로 낮밤을 지새운 3년의 세월은 제 인생의 어느 때보다 성장에 대한 욕망으로 가득 차게 만들어주었습니다. 불스원샷 제대로 때려 넣고 달릴 준비가 끝난 힘찬 엔진을 가지게 되었어요.


이제야 비로소 저는 두 번째 세 살의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