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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희 Oct 22. 2020

만삭촬영

임신한 이후, 사진 찍는 일을 꺼리게 되었다. 

후덕해진 얼굴과 굵어진 다리,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몸 이곳저곳에 붙은 살들을 마주하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머릿속 나의 모습은 언제나 실제보다는 미화된 모습이었다. 머릿속으로 내 모습을 떠올릴 때면 나도 모르게 보정된 사진 속 모습이나, 화장 직후의 화사한 모습을 떠올렸던 것이다. 아마도 이런 나의 행동은 심신안정을 위한 나만의 보호 기제였는지도 모르겠다. 여튼 내가 굳이 거울이나 사진으로 나의 실제를 마주하지만 않는다면, 달라진 내 모습으로 인해 우울할 일은 자주 발생하지 않을 것임이 분명했다.

      

그런데 최근 산후조리원과 연계된 스튜디오로부터 만삭촬영 안내를 받았다. 산후조리원 계약 즈음 무료로 진행된다는 만삭촬영 예약을 했던 것이 생각났다. 나를 사진으로 마주하는 일은 여전히 꺼려졌지만 그래도 무료라는데, 굳이 마다할 이유가 있겠는가. 그렇게 나는 남편과 함께 만삭촬영 스튜디오에 방문하게 되었다.

      

임신한 이후 아무런 이유 없이 얼굴이 울긋불긋해졌다. 예민해진 피부에 마스크까지 써야하니, 혹 피부가 완전히 뒤집어질까 두려워 화장은 가능한 한 피하게 되었다. 이렇게 노메이크업으로 생기 없이 지낸 시간이 벌써 한참이었다. 오랜만에 화사한 조명 아래 앉아 메이크업을 받고 있자니 기분이 좋아졌다. 거울에 비친 샤방한 내 얼굴을 보며 ‘그래, 아직 죽지 않았어’란 생각을 잠시 했던 것도 같다.      


메이크업을 마치고 스튜디오에 준비된 촬영용 드레스를 고르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넉넉해 보였던 드레스들이 모두 몸에 맞지 않았다. 아니, 들어가기는 하는데 여기저기 살들이 삐져나오는 탓에 아주 부담스러워 보였다. 몇 벌의 드레스를 입고벗고 하느라 촬영 시간이 지연되기까지 했다. 몸에 맞는 헐렁한 드레스를 발견하고서야 간신히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대체 내 몸은 언제 이렇게까지 변해버린 걸까. 촬영 원본을 받고 우울감은 더 심해졌다. 난 그저 활짝 웃는 모습이 예쁘다는 작가의 말에 열심히 웃어 보였을 뿐이었는데, 웃음 덕에 보름달 같아진 내 얼굴은 남편 얼굴의 두 배는 되어 보였다. 앞뒤로 볼록 둥그래진 몸매는 키를 몇 배나 더 작아보이게 했고. 

     

무료라는 말에 넘어가 내 모습을 호되게 마주하고야 만 시간이었다.

임당 검사를 통과한 이후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먹어대었던 나에게 경종이 울린 것일테지.  

나와 아이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다시금 정신을 차려야 할 때인 것 같다.

      

어찌되었건 마음이 아픈 것은 사실이니...

보정본이 나오기까지 원본 사진은 보이지 않는 곳에 고이 묻어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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