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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희 Nov 09. 2020

산후세계, 살만 한가요?

드라마 '산후조리원'을 보고-

"산후세계"


사후세계의 오타인가 싶었던 생소한 이 단어는 출산 후 펼쳐지는 새로운 세상을 뜻하는 말이었다. 

최근 방영을 시작한 드라마 '산후조리원'은 성공한 커리어우먼인 현진이 42살의 늦은 나이에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면서 마주하게된 산후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현진은 화장품 회사의 상무로 승진한 날 임신임을 알게된다. 현진은 임신 사실에 마냥 즐거워할 수가 없다. 

임신한 몸으로 회사 상무직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을지, 경력의 단절은 없을지 등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변해가는 몸은 점점 더 무겁고 버겁기만 하지만 현진은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다. 

술을 마실 수도 없는 회식 자리에 끝까지 남아 고기를 뜯고, 출산예정일 이틀 전 중요한 클라이언트와의 계약을 성공적으로 따내기도 한다. 

출처, 산후조리원 공식 홈페이지

이렇게 강단있고 똑부러지는 현진에게도 임신은 낯설기만 한 경험이다. 뱃속의 아이에게 사랑한다는 태담 한마디를 건네는 일도 어색하고 부끄럽다. 아이와의 시간을 갖는 일도 필요하겠지만, 몸은 하나 뿐이지 않은가. 하나뿐인 몸으로 회사생활에 집중하는 사이, 덜컥 출산의 그 날이 찾아왔다.

 

누구도 제대로 얘기해준 적 없었던 출산은 생각처럼 아름다운 경험이 아니었다. 관장-제모-내진이라는 굴욕의 시간을 보내고, 말로는 도저히 표현하기 힘든진통의 시간을 지나, 생사의 강을 건너서야 아이를 마주하게 된 현진. 아이를 안는 것도, 우는 아이를 달래는 것도 생소한 현진은 그저 허둥지둥할 뿐이다.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하다(출처, 산후조리원 공식홈페이지)

그렇게 병원에서의 시간을 마친 현진은 사후조리원에 입소하게 된다. 산후조리원에서 모유수유에 어려움을 겪게된 현진은 자신이 아직은 부족한 엄마임을 인정하고, 아이를 위해 자신을 온전히 내려놓는 일을 시작하면서엄마로서의 진정한 첫 발을 내딛게 된다.

출처, 산후조리원 공식 홈페이지


깔깔 웃으며, 또 눈물을 글썽이기도 하며 드라마를 봤다. 

이거 완전 미래의 내 이야기 아닌가 하는 생각에 오들오들 떨기도 했다.


임신을 알게된 날, 나 역시 경력에 대한 고민으로 마냥 기뻐하지만은 못했다. 태어날 아이를 위해 이직을 결정하고 이사까지 했지만, 아직도 온전히 나만을 생각하며 치열하게 일했던 날들이 조금은 그립다. 


나름 똑부러지는 사람이라 자부하며 살아왔지만 변해가는 몸을 감당해내는 일이나, 아기를 위한 준비를 하는 일에는 마냥 서툴뿐이다. 

어쩜 다들 그리 꼼꼼하게 출산준비를 한 건지, 

무얼 사고, 어떤걸 사고,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어찌 그리들 잘 아는지. 주변의 임산부들이 대단하고 존경스럽기만 하다. 이미 이 시간을 지나온 이들의 조언과 도움을 나도 모르게 간절히 바라게 된다. 


서툰 엄마 현진이 자신을 내려놓는 일로 한걸음 더 '엄마'의 모습에 가까워진 것처럼, 

나 역시 매일을 살아내며 조금씩 더 엄마의 모습에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현진의 모습에 깊은 위로와 용기를 얻은 밤이다.

앞으로의 현진의 여정까지 네모상자 앞에서 마음껏 응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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