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펌 변호사가 되어 가장 좋았던 점은 '내 방'이 있다는 것이었다.
삼성동 한복판에 이 한 몸 편히 쉴 수 있는, 아니 일할 수 있는 방이 있다니!
첫 출근 날 내 자리를 확인했을 때 밀려오던 감동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대학 6년(휴학 2년 포함), 로스쿨 3년 도합 9년 동안 학교 생활을 하면서(정말이지 지긋지긋했다),
사회 속에 나만의 공간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에 대해 늘 생각했다.
무거운 민법강의 책을 이고지고 옮겨다니면서,
바스락거리는 옆 자리 학생을 피해 이자리 저자리를 옮겨다니면서
아무때고 맘 편히 머물 수 있는 내 자리를 언제나 꿈꿨더랬다.
그렇게 9년만에 학교를 탈출했다.
나는 로펌 변호사가 되었고, 소원처럼 내 방을 가지게 되었다.
회사에 내 방이 있어 가장 좋았던 점은 무엇이었을까.
제일 좋았던 건 우선 내 리듬에 맞춰 일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파티션이 있는 열린 공간에선 늘 누군가의 시선이 신경쓰였다.
내가 보고 있는 노트북 화면을 누가 들여다볼까,
혹 졸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성실하지 않다고 생각하는건 아닐까,
너무 먹어댄다고, 저러니 살이찌지 생각하는건 아닐까를 늘 신경썼다(별걸 다 신경쓰던 나였다).
10분만 졸고 나면 정말 집중이 잘 될 것 같은데, 눈을 부릅뜨고 있느라
당장 당만 보충하면 문제가 없을 것 같은데, 주변 눈치를 보느라
효율이 떨어진 채 지낼 때가 많았다.
하지만 내 방에서는 오롯이 나의 리듬에 맞춰 일할 수 있었다.
야행성 체질인 나는 아침에는 느리게 시간을 보내고(주로 먹고, 졸고^^) 오후부터 주로 일을 시작했다.
내 리듬에 맞춰 일을 하니 효과적으로 더 많은 업무량을 감당할 수 있었다.
비가 오는 날엔 방이 있어 더 좋았다.
나는 흠뻑 젖은 구두를 벗어 던지고 편하게 발을 닦았다.
비 오는 날 듣고 싶은 노래를 골라 들으며 일하기도 했다.
jazzy한 노래를 틀고 흔들 의자에 앉아있자면 마치 성공한 어른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꽃 한송이에 붉게도, 노랗게도 물들일 수 있는 내 방에 앉아
로펌 변호사가 되어 잘했다는 생각을 아주 잠시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월 40건 이상의 사건들을 처리하면서 퇴근할 수 없는 날들이 많았다.
너무나도 고단했던 그 시간들에 가장 큰 힘이 되었준 건 내 방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방 안에서 사건 기록들을 읽으며 나는 이 사람과 저 사람의 인생을 살아야 했고,
그들이 생각하고 있을 것들에 대해 생각해야 했다.
때론 내 자신보다 다른 이들의 삶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해야 했지만
그래도 문득 눈을 들어 나만의 취향과 색깔로 꾸며진 방 안에 있음을 마주하게 될 때면
이상하게 위로를 받곤 했다.
누군가의 대리인으로 제대로 일해내기 위해선, 다른 이의 삶에 고요히 집중하여 몰입하는 일이 반드시 필요한 것 같다.
더 제대로 이해하고,
더 제대로 이야기하라고,
로펌 변호사에게 방이 주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긴 공휴일을 지나 오랜만에 출근한 사무실에서
일이 잘 되지 않는 틈을 타 짧은 글을 끄적여본다.
나만의 방에서 일하고 싶해보고 싶다면,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보고, 이해하고, 대신해서 이야기해보고 싶다면
로펌 변호사란 직업을 선택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