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다희 Oct 11. 2024

생각 산사태에서 살아남는 법

해야할 일이 너무나 많다.

생각해야 할 일들도 많다.


업무를 하다가도

아, 오늘 저녁 아이 반찬으로는 뭘 주어야 하나

마트앱으로 장을 보고,

아, 그나저나 주말에는 애 데리고 어디가지

거기나 예약해 볼까, 예약을 하고.

걸려오는 전화에 쓰던 서면을 재치고 다른 사건 자문을 처리하다가,

아, 근데 너무 피곤하다, 그래 운동을 더 열심히 했었어야 하는데를 생각하다가.


나만 이런건지,

아님 모두 다 이렇게들 사는건지,

그렇다면 세상 사람들은 참 너무 대단들 하다고 얼렁뚱땅한 생각도 해보다가,  

분주한 하루의 끝, 뭔가 빠진 것 같은데 뭘까,

에라 모르겠다, 잠이나 자자 하는 식.


이렇게 해야할 일들은 많은데 도무지 그 양을 가늠하지 못하겠을 때,

결국 다 해내지 못하고 말거라는 두려운 생각이 들 때,

왜 불안한지, 왜 초조한지 이상하게 머리가 복잡할 때,

나는 일단 무엇이든 끄적여본다.


나는 참으로 아날로그적인 사람이므로

여전히 연필과 종이가 편하다.


우선은 머릿 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종이에 던지듯 적어본다.

다음으로는 적어놓은 생각들을 테트리스 하듯 정렬한다.

당장 시급한 일, 신중을 기하는 일,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일 순으로 번호표를 부여하고 s자를 그려가며 위, 아래 순서를 정렬해준다.

마지막으로는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오늘 나의 생각이 닿을 수 있는 곳까지만 선을 찌익 그어 마감표시를 해준다.

내일로 넘어간 일에 대해서는 내일의 나에게 고민과 걱정을 맡기기로 약속한다.


이렇게 종이에 생각들을 내던져놓고 보면, 온갖 곳으로 들쑥날쑥 정신없던 마음이 조금은 차분해진다.


미처 다 할 수 없는 만큼의 일들을 생각하고, 고민하느라 느끼던 버거움도 조금은 가벼워진다.


내가 왜 불안했는지, 무엇 때문에 초조했는지 그 이유를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당장은 어렵지만, 장기적으로 고민하며 해결해 나가야 할 일들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기도 한다.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감 선을 잘 그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꺼번에 다 떠안으려고 욕심부리지 않는 것,

오늘 하루 딱 이만큼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생각하고, 고민하고, 일하겠다고

선을 잘 그어주는 일,

그렇게 다시 숨을 고르고 걸어가기로 다짐하는 길.


매일같이 연습하는 일이지만, 언제고 어려운 일임만큼은 틀림없는 것 같다.


오늘도 정신없는 하루를 살아내며 물밀듯 밀려오는 생각들에 허우적댄다.


치이지 않고 넉넉히 살아내기 위해서,

생각 산사태에 파묻히지 않기 위해서,


잠시 끄적여보는 시간.


이전 06화 계란찜이 폭발한 이유는 뭐였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