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0과 100사이에서 균형을 잡지 못하고 여느덧 고꾸라져버린 밤
전부를 원하는지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질 알수 없어 둥둥 뜬 외로움이 종이 위 단어들로 떨어졌다
너는 왜 쓰냐고 물었을때
자신의 이야기가 세상에 어떤 파장을 남길만한 것이란 확신이 느껴졌던 그 아이
이야기란, 세계를 짓는 일, 새롭게 세우는 일
그런데 왜 무너져 내리고 싶을까
한강을 읽는 건, 흘러 내리는 익숙한 슬픔에 삼켜지지 않는 안전한 공간을 빚는 일
(아니. 기꺼이 그 슬픔의 입 속으로 달려가는 일일까? 나를 집어삼켜줘)
한강이 쓰는 건, 고요한 압력 속에서 부풀어 오르는 흰 쌀밥을 짓는 일
고요와 폭발
아마도 10년 전에 내가 밑줄 쳐 둔 문장들
"아, 죽어서 좋았는데
환했는데 솜털처럼
가벼웠는데"
"나도 모르게 팔 뻗어 줍고 싶었지
그때 알았네
그러려면 다시 살아야 한다는 것
그때 처음 아팠네
그러려면 다시 살아야 한다는 것"
시 마지막에 '아픔을 뚫고'라고 선명한 볼펜으로 감상을 남긴것
그때 어떤게 아팠었더라
희미해진 아픔과는 달리 영엉 박혀버린 말의 조각
아픔을 펄펄 끓여 이런 시를 지을 수 있다면
그 아픔은 뚫고 지나올만한 가치가 있었던 것이 될까
한 사람의 영혼을 갈라서
안을 보여준다면 이런 것이겠지
그래서
피 냄새가 나는 것이다
붓 대신 스펀지로 발라
영원히 번져가는 물감 속에서
고요히 붉은
영혼의 피 냄새
이렇게 멎는다
기억이
예감이
나침반이
내가
나라는 것도
(...)
만져지는 물결처럼
내 실핏줄 속으로
당신의 피
스며오르는 것
번져오르는 것
피투성이 밤을
머금고도 떠오르는 것
내 실핏줄 속으로
당신 영혼의 피
- 마크 로스코와 나 2
실핏줄이라는 단어가 만들어 낸 어떤 역동성. 왜?
잔잔하게 번지는 이미지와는 대비되는 그 좁은 공간을 뚫고 흐르는 격동, 급진, 충동, 심박이 느껴졌던
나에게
혀와 입술이 있다.
그걸 견디기 어려울 때가 있다.
(...)
그러니까 내 말은,
안녕.
어떻게 생각하세요.
진심이야.
후회하고 있어.
이제는 아무것도 믿고 있지 않아.
*
통증을 모르는
차가운 머리카락과 손톱들이 있다.
손가락 관절들이
다정하게
고통에 찬 말을 걸어온다
*
몸속에 맑게 고였던 것들이
뙤약볕에 마르는 날이 간다
끈적끈적한 것
비통한 것까지
함께 바싹 말라 가벼워지는 날
겨우 따뜻한 내 육체를
메스로 가른다 해도
꿈틀거리는 무엇도 들여다볼 수 없을
다만 해가 있는 쪽을 향해 눈을 잠그고
주황색 허공에
생명, 생명이라고 써야 하는 날
혀가 없는 말이어서
지워지지도 않을 그 말을
- 해부극장 2
물컹거리는것(아마도 abject)와 말라버리는것(아마도 우울) 그 사이. 차이. 아니면 그냥 인과. 결국엔 말라버리는 것들. 내 몸.
슬픔이라곤
이미 흘러나간 자국뿐
- 피 흐르는 눈 4
연시가 많다는 것. 흐름과 마름의 대비. 말라버린것들을 그대로 두고 갈 수가 없어 다시 흐르게 하는 것. 1,2,3,4 계속해 찾아온 마음. 어떤 시들은 6에서 12로 넘어가기도 ('몇 개의 이야기'). 그리고 '서울의 겨울'은 12만 덩그러니 남은. 6과 12 사이에서. 1과 12 사이에서. 작가는 무엇을 삼켰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