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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존재 Apr 25. 2020

상념들 4


1. 불멸하는 가치란 얻기 힘든 것이다. 외부에 영향받기 쉬운 인간일수록 확립된 무언가를 거머쥐긴 어렵다. 확신을 채 얻기도 전에 새로운 것을 알아버리기 때문이다. 


세계는 신선한 것들로 가득하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탄생한 것들, 현존하나 나는 아직 모르는 것들, 누구도 모르지만 앞으로 만들어질 것들 - 모두가 나란 인간 개인에겐 새로운 것들이다. 


우리들은 인류의 자랑거리들을 뇌에 눌러 넣기 위해 살아가는 것 같다. 인류가 두건을 젖히고 뿌듯이 전시해놓은 작품들은 다름 아닌 인간들이다. 인류가 우리에게 생과 의지와 의식을 부여한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의 신은 인류 자체인지도 모른다. 


진리를 추구하는 것만 하더라도, 인생을 몇 번은 더 살아야만 얕게나마 겨우 근접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궁극적으론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인류란 신이 비대해져 가는 것을 개인이 죽고 부활하는 속도론 따를 수 없을 테니, 무한히 생동하더라도 인간은 모든 것을 깨우칠 순 없을 것이다.



2. 사람은 쓸쓸할 때 많이들 글을 쓴다. 글을 쓰거나 읽거나 갈구한다. 다들 그렇다. 낭자한 인간과 대화들 안에 퐁당 잠겨있더라도 쓸쓸해지는 것을 어쩔 순 없다. 인간이 인간 때문에 살아간다 해서, 타인이 행복만을 불어넣어 주진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글을 좇는 것이다. 글은 혼잣말의 분신이다. 외로이 머릿속을 거니는 상념 덩어리들을 뭉쳐 우리의 중얼거림 들을 주문삼아 불어넣으면, 그것이 어떤 형체를 갖고 인간 앞의 종이에 또박또박 새겨지는 것이다.



3. 추억들만을 음미하기엔 할 수 있는 것이 너무나도 많다. 지나간 것이 상처이든 희열이든 붙잡고 계속 핥기만 할 순 없다. 추억을 상기시키는 어떠한 것을 마주했을 때의 기분은 이루 말할 수가 없지만, 그것이 주는 강렬하고 따뜻한 감상을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여물이 지워지고 망글대는 알맹이만 남은 기억들은 지독히도 사랑스럽다. 


그러나 그들이 주는 주황빛 고양감에 중독되어선 안 되는 것이다. 로메슈제에 중독된 개미처럼 눈이 멀기 때문이다. 의식 어딘가에서 그때 모습 그대로, 감정과 음악이나 대화가 얽힌 채로 내게 발견되길 고대하며 머무르는 추억들에겐 미안하지만, 나는 바쁘다. 오래된 것들 안에 고인 듯 잠겨있기엔 느끼고 깨닫고 배울 수 있는 미지의 것들이 아찔하게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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