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존재 Apr 30. 2020

깨어진 관계 앞에서 고뇌

1. 나는 감정적인 한계를 깨부수고자 노력 했던 것이다. 감정적이고 인간적인 한계, 기본적으로 타고난 습성들로부터 떠나 내가 원하는대로 그들을 사용하기 위하여 용기를 이용했다. 


용기는 내가 쓰고싶을 때 발현시킬 수 있다는 것이 유용하다. 척추만큼 단단히 박혀잇는 천성을 바꾸기는 어려우나, 그 뼈대가 바라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용기는 단련할 수 있었다. 


뼈대가 회피형에 겁쟁이라면, 용기란 근육을 강하게 만들어 가고싶은 곳으로 나아가려 한 것이다. 익숙치 않은 상황들에 대면하면 어쩔 수 없이 본성이 튀어나오지만, 조금만 경험하다보면 적응할 수 있다. 현대 인간에게 일어나는 행동 양식들은 거기서 거기이기 때문이다. 


감정을 다루어 단점을 보완할 수 있게 되면 좋겠지만, 감정은 조절할 수 없기에 감정인 것이다. 사람들이 조절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저 억압이다. 감정의 표먼적인 절제는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근본적인 절제는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감정에 대한 인간의 최선은 적응하는 것이다.  



2. 죄책감이 드는거야 두려움이 드는거야 뭘까, 익숙하고 불쾌한 깊은 곳의 고동, 어렷을 적부터 타인 앞에 서면 갖던 공포. 


친구에서 타인이 되어버린 인간에게 느끼는 당혹인지도 모른다. 나의 죄로 인하여 깨어진 관계라면, 이란 가정 밑의 배덕감인지도 몰랐다. 


애초에 나의 이성은 가슴과 이어져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성이 앞장서서 고뇌를 마치고 머리로 납득하고 합리화를 끝마쳐도, 감정은 멀리 들판에서 자기 나름의 춤을 계속 추고 있다. 


이해하더라도 받아들이는 데엔 시간이 걸린다. 감정에 적응하는 것에 적응해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뚫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