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성에 젖지 않기 위해 정신을 온전히 놓는 작업 정신의 갈래를 몇 가지로 한정 짓는 작업 보고 듣는 것을 거르며 눈과 귀와 뇌를 맑게 유지하는 작업 언어를 재단하는 작업 만나는 사람들을 선별하는 작업 쾌와 불쾌의 주관을 갖는 작업 중독 물질을 멀리하는 작업 일찍 잠들고 새벽에 깨는 작업
인간은 작업의 반복 훈련의 연속 의도된 대로 되는 것이 인간이 아니니 살아가는 자들은 결국 전부 자신의 운명대로 살아간다 나의 삶을 통제하고 있다고 믿는 것도, 삶이 운명대로 흘러간다고 믿는 것도 전부 운명이다
마침표를 쓰지 않는 일, 마침표를 쓸 수 없는 일 문장의 끝이 정해지지 않은 일 타자에게 나의 정신을 온전히 전달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일 마침표는 일을 하고 돈을 벌 때나 쓸모 있다고 생각하는 일 발을 쿵쾅대며 걷는 윗집 모자의 발목을 자르고 싶다고 생각하는 일
되물어도 삶의 목적은 없다 삶의 방향은 존재하지 않는다 깊이 쌓아둔 잎, 둑, 그래 무엇을 말하려고 이곳에 당도했나
온전한 문장은 타자와의 소통을 위한 것이다. 타자와의 소통은 무의미하다. 그래서 나의 언어는 와해된다. 나의 언어는 언어의 본래적 목적에서 벗어나 용해된 무의식을 단편적으로 비추는 도구로 사용된다. 나의 모든 발언은 아포리즘이 된다. 나의 글은 언젠가 과거의 나였던 것을 대변한다. 바다에 관한 글을 썼던, 연인에 관한 글을 썼던 나는 대뇌피질의 일부에 아주 작게 기록으로 존재할 뿐이다. 지금의 나는 그때와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사이에 짙게 늘어진 안개를 두고 서 있다.
무엇을 위해 발을 굴리나 발 껍질이 벗겨진다 엄마는 발을 닦곤 했다 발이 흉한 것을 싫어하던 엄마는 발의 각질을 오래도록 깎아내곤 했다 목수가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사포로 나무를 긁어내듯이 나는 내 머리카락을 아껴 자르곤 했다 머리카락이 나의 영원한 외형이 되기라도 할 거라는 듯이 야금야금 머리카락을 잘라 내려갔다 그러나 미용을 배운 적도 없는 내가 스스로 자른 머리는 형편없을 뿐이었다 세상 속에서 그건 당연한 일이다
그래 어쩌면 나는 나의 근원을 찾아 흘러내려가고 있다 피와 체액을 타고나는 그런 생물이다 존재의 반추를 거듭할 수밖에 없는 생물 피상성이 죽기보다 싫은 생물 표정을 뜯어 바닥에 내팽개치고 싶은 생물 모든 껍데기를 벗겨내고 나면 진주를 찾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