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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존재 Apr 02. 2020

볕 틈의 날

3월 마지막 일요일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평화. 자아의 정취. 격동 밖의 부유.  

오늘의 기분이 좋다. 나의 기분이 좋은 것이지만, 나와 별개인 것으로 상상하더라도 이 기분 자체가 인간 안에 존재한다는 것이 온연히 따스해서 좋다. 친구들에게 나누어주고 싶은 기분을 느끼는 것은 정말 처음인 것 같다. 나에게서 떨어져 나가 음성으로나마 타인에게 스며들 수 있다면 행복할 것만 같다고 깊이 느꼈다.

인간들은 겨울잠을 자진 않지만, 좁은 열차 칸에 갇혀있듯이 계절 안에 갇혀있곤 한다. 흐린 하늘은 우울을 불러온다. 계절이 하늘에 심어둔 감각들이 눈과 함께 흩뿌려져 머리들에 스미는 것이다.

바람의 찬 껍질은 거의가 부서졌다. 이젠 정말 따뜻하다. 칼바람들은 철새처럼 떠났다. 그들은 사라지면서, 봄을 온 마음으로 맞이하고자 하는 인간들을 위하여 빈자리를 마련해 두었다. 어두운 태도 안에 구부러져 굳어가던 기분들이, 그 빈자리들을 마주하면서 다시금 채색된다.

행복과 불행은 파도치듯 넘실거리며 오가는 것이다. 삶의 중앙에서 표류하는 인간은 그들을 피할 수 없다. 달아나려고 물을 헤치며 발버둥 치다간, 힘이 다 빠져버려 쓸려갈지도 모른다. 신체적인 의미이든 정신적인 의미이든 완전한 소진이 죽음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용케 차분한 행복이 찾아온 것이다. 격정은 변질되기 쉽다. 이런 형태의 행복이 좋다. 완전히 감상할 수 있을 때엔 특히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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